[국보법폐지 논란]人共旗 흔들고 북한 찬양해도 처벌 어려워

  • 입력 2004년 10월 18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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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안 확정 이후 논란은 더욱 첨예해지고 있다. 형법의 내란죄 부분을 보완했기 때문에 친북용공 행위 처벌에 문제가 없다는 열린우리당의 주장과 처벌은 고사하고 이런 행위의 조사 자체가 힘들어질 것이라는 한나라당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 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서울 세종로 한복판에서 인공기를 흔들며 시위를 벌여도 되는 걸까. 또 친북활동을 위해 북한을 드나들어도 처벌할 수 없는 ‘안보 공백’이 생기게 될 것인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알아본다.》

▼찬양고무 관련 사례▼

▽주체사상을 선전하는 글을 인터넷에 띄운다면?=북한 체제를 단순히 찬양하고 선전하기 위해 인터넷을 통해 주체사상을 퍼뜨리는 것은 처벌하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열린우리당은 내란 예비·음모죄로 주체사상의 인터넷 유포 행위를 처벌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내란죄는 폭동을 일으킬 의사를 가진 사람에게 제한적으로 적용돼야 한다는 게 법률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부 법조인들은 “동조세력 포섭을 위한 통일전선전술활동 같은 경우는 내란죄나 내란 예비·음모죄로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반면 열린우리당의 논리는 친북행위는 그 ‘목적’에 따라 처벌을 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예를 들어 순수한 학술적 차원의 주체사상 연구나 관련 책자 발간은 처벌할 수 없지만, 북한에 충성할 목적으로 주체사상을 학습하는 경우엔 형법의 내란 예비·음모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 충성할 목적’을 조사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따라서 형사처벌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게 되고 결국 좌익사범 수사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세종로에서 친북집회를 연다면?=몇 사람이 경찰에 집회 신고를 하고 세종로에서 인공기를 흔들며 북한에 동조하는 집회를 가져도 이들을 처벌하는 게 어려워질 수 있다.

형법보완안으로 형사처벌이 가능하려면 집회 참가자들이 북한측과 연락을 취하는 등 폭동을 일으킬 목적으로 집회를 개최한 점을 밝혀내야 한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이같이 북한과의 연계성을 입증할 수 없다면 ‘미친 사람’ 취급은 할 수 있어도 처벌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평화적으로 친북 집회를 열더라도 내란죄 예비·음모 등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친북’이라는 말 자체에 북한과의 연계성이 내포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집회가 공공 대중에게 위압감을 줄 경우 형법 114조의 공안(公安)을 저해하는 죄로 소요죄가 적용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선까지 친북으로 볼 것인지는 다분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역시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북한의 대남 선전물을 배포한다면?=체제전복을 위한 활동이라는 사실이 확인돼야 처벌이 가능해진다. 문제는 어떤 행위가 체제전복을 위한 활동에 해당하는지 판단이 애매한 점이다.

만약 북측과 연계된 인사의 지시를 받고 대학가 등에서 대남 선전물을 나눠주다가 적발돼도 체제전복 의사를 부인하고 북측 인사와의 관련성만 숨기면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 순수 학술목적으로 대남 선전물을 배포했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게 열린우리당의 주장이다.

▼회합통신-금품수수▼

▽친북활동을 위해 북한을 오간다면?=형법보완안의 내란죄뿐 아니라 출입국관리법 남북교류협력법 여권법 등으로도 처벌이 힘들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내란죄는 ‘폭동 목적’이 수반돼야 하기 때문에 친북활동을 위해 북한을 다녀온 사람을 내란죄로 처벌할 수 없고, 북한은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외국을 오가는 행위를 대상으로 한 출입국관리법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우리 국민이 북한 개성공단을 방문할 때 여권이 필요하지 않은데 어떻게 여권법을 적용하느냐는 반론도 있다.

이 밖에 북한 공작원이 신분을 속이고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신고를 한 뒤 남한을 찾아와 주체사상을 전파하고 친북세력을 포섭할 경우에도 이 법으로는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은 친북활동 목적이 있다면 내란죄나 내란목적단체조직죄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 이런 목적 없이 북에 있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밀입북한 경우라면 내란죄가 아니라 출입국관리법과 여권법,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 북한 대학생 단체와 팩스를 주고받으면?=현행 국보법의 회합·통신죄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형법보완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한총련이 북한의 대학생 단체와 단순 의견 교환 목적으로 팩스를 주고받았다면 내란죄로 처벌할 수 없다. 그러나 명백한 친북활동 목적으로 문서를 주고받았다면 내란죄의 예비·음모, 내란목적단체조직 등에 걸릴 수 있다.

문제는 명백한 친북활동의 목적이 있었는지를 입증하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다.

또 북의 고위 공작 책임자가 예술단 소속 사업가 신분으로 남한에 와서 신분을 숨긴 고정간첩들과 만나고 돌아갈 경우 회합·통신죄가 없으면 무방비 상태로 쳐다볼 수밖에 없게 될 가능성도 있다.

▽북한으로부터 공작금을 받았다면?=형법보완안에서는 돈을 왜 받았는지에 따라 처벌 여부가 결정된다. 예를 들어 중국을 방문해 북한에 살고 있는 이산가족을 만나 생활비 명목으로 돈을 건넨 경우는 당연히 처벌할 수 없다.

수사 관계자들은 “금품수수 행위에 대해 내란죄로 처벌하기 위해선 돈을 주고받은 사람이 폭동을 일으키려는 목적이 있었는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점조직을 통해 은밀하게 금품을 주고받는 것 자체도 적발하기 어려운데 무슨 수로 목적까지 밝혀낼 재간이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불고지-북한규정▼

▽간첩을 보고 신고하지 않았다면?=남북대치 상태에서 눈앞의 간첩이나 무장공비를 보고 신고하지 않았는데도 아무런 제재 조항이 없다는 것은 사실상 간첩 활동을 합법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보법 제10조 불고지죄가 삭제되고 이를 대체하는 조항도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은 “간첩 여부는 가족 등 지극히 소수만이 알 수 있는 인륜의 문제이기 때문에 한나라당도 이를 악법조항이라고 인정하고 있다”며 “실효성이 없는 조항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외국인가?=헌법은 북한을 정부로 인정하지 않지만, 열린우리당의 형법보완안에서는 북한에 대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 형법 87조(내란죄) 2항에 새로 규정된 ‘내란목적단체’ 또는 수정한 형법 98조(간첩죄)에 등장하는 ‘외국’의 개념이 뒤섞인 상태다.

한나라당 법률지원대책단장인 장윤석(張倫碩) 의원은 “열린우리당이 법을 체계적으로 만들지 못해 북한을 외국으로 볼지에 대한 개념이 혼란스러워졌다”고 주장한다. 특히 형법보완안에서 북한을 내란목적단체로 규정하고 간첩죄를 ‘외국 또는 외국인의 단체를 위한…’으로 규정하는 바람에 간첩죄 처벌 근거마저 없어졌다는 입장이다. 물론 이는 조항을 곧이곧대로 문리적으로만 해석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최재천(崔載千) 의원은 “현행 국보법에도 북한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고 ‘반국가단체’라는 개념을 적용하고 있을 뿐”이라며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새 법을 적용해 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북한에 대한 개념이 정립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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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훈기자 dreamland@donga.com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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