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를 말한다” …김병준 정책실장 기고 전문

  • 입력 2004년 10월 18일 19시 18분


코멘트
(*이 글은 최근 대학 등에서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방향에 대해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며, 강연한 내용에 일부 새로운 내용을 더했다.)

▶ 들어가면서
청와대 정책실장의 자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자리다. 그 특성상 스스로 적극적인 의사를 표시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이 글을 정리하면서도 여전히 조심스럽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 글의 내용은 정부 입장이 아니라 김병준이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받아 주었으면 한다.

▶ 신문을 읽다보면
신문을 읽다보면 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다. 좋은 기사도 많고, 도움이 되는 지적이나 건설적 비판도 많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건 너무하다'고 느끼는 보도나 논평이 적지 않다.

하나의 예가 되겠지만, 얼마 전 어느 주요 일간지가 참여정부의 국책사업과 관련하여 정부가 곧 엄청난 부채를 짊어지게 될 것이라 보도한 적이 있다. 수년 내 300조원을 신규투자 하게 되어 있는데, 그 대부분이 국가부채로 남게 될 것이란 내용이었다.

국민들이 얼마나 놀랐을까? 정부를 얼마나 욕을 했을까? 그러나 한마디로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균형발전 관련 사업들을 예로 들면 새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써오던 것을 참여정부의 정책방향에 맞게 재편해서 쓰는 것이다. 관계기관에서 이미 수십 번 설명을 한 사실인데 어떻게 해서 이런 기사가 나올 수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모르고 썼다면 제대로 된 언론이라 할 수 없고, 알고서도 보도했다면 더 큰 문제 아니겠는가?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기사를 믿고 외신(뉴스위크)이 이를 그대로 인용했고, 이를 최초로 보도했던 신문은 이를 다시 '믿을 수 있는 외신보도'로 되받아 한 번 더 보도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보도는 정부를 비판하고, 대통령을 비판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국익을 해치는 일이고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일이다. 그것으로 인해 떨어졌을 국가의 대외 신인도를 생각해 보라. 한번 웃고 지나갈 일은 결코 아니다.

한 가지 더 예를 들어보자. 최근 어느 신문이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 문제를 연일 '특종보도' 한 적이 있다. 한국은행의 연구보고서를 기사화한 것인데, 기사의 내용을 보면 마치 정부가 그렇게 하기로 한 것처럼 착각하게 되어있다.

리디노미네이션 문제는 중앙은행인 한국은행 입장에서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문제다. 연구를 하고 연구보고서를 내었다 해서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연구보고서가 곧 정부의 정책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정부가 수 없이 강조해 왔듯이 참여정부는 '분권과 자율'이라는 원칙을 바탕으로 한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누구도 절대권을 행사하지 않으며, 어느 한 기관이 하자고 한다 해서 너도나도 말없이 따라가는 형태는 더욱 아니다. 리디노미네이션 문제에 있어서도 청와대·재경부·한국은행의 입장이 모두 다를 수 있다. 중앙은행의 연구보고서 하나가 결정적 영향을 미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이런 마당에 이것을 마치 결정된, 아니면 곧 결정될 정책인 양 보도하여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국민을 불안하게 해야 하겠는가?

이 이외에도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다. '공무원 주도의 개혁'을 '홍위병 논쟁'으로 비화시켜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든 일, 잘못된 안보관련 정보를 사실 확인도 없이 보도해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일 등. 며칠 전에도 우리는 모 언론사 간부가 쓴 가히 코메디 수준의 글을 보았다.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정책과정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이야기인데, 이 우습지도 않은 상상력은 여의도에 나돈다는 정보지를 연상케 했다.

정부가 잘못한 것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국민과 정부 사이를 벌려 놓는 차원을 지나 국가의 경쟁력과 안위를 심각하게 해치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거나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잘 알리지 못해 일어나고 있는 문제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정부의 홍보노력에도 한계는 있다.

어떤 분들은 "주요 언론사와의 관계가 나빠서 그렇다"라고 이야기하는데, 틀리지 않는 이야기인 듯하다. 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 보면 단순히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정부가 하는 일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비판하기 위해서는 언론사 나름대로의 축적된 역량이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이 그렇지 못하다는 느낌이다. 분석적 기사를 독자가 관심을 가질 만큼 재미있게 쓰기보다는 속보성 기사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존재하는 것 같고,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쉽게 흥미를 끌 수 있는 비본질적인 내용이 앞으로 나오게 된다.

한 예로 얼마 전, 신행정수도 관련 기자 간담회를 자청한 바 있었다. 수도이전의 논리와 야당 주장의 문제점 등을 길게 설명한 자리였다. 뒷부분에 가서 "정말 걱정이 되어서 반대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그 중에는 막연히 대통령이나 정부가 싫어서 나서는 사람도 있다. 이 분들은 탄핵 때는 탄핵에 앞장서고 수도이전에는 그 반대에 앞장선다"라고 한 마디 하였는데, 그날 보도된 것은 결국 '청와대 정책실장, 탄핵세력이 수도이전 반대 주도 주장' 등의 자극적인 내용이었다. 문제를 풀러 갔다가 오히려 더 꼬이게 만든 꼴이 되어 버렸다.

▶ 경제, 화끈한 처방은 없는가?
"저 보세요. 가게들이 텅텅 비어 있잖아요. 이러다가 다 굶어 죽어요." "어려워 못 살겠다고 하면 반개혁적이라 하니, 이런 놈의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택시를 타면 흔히 듣는 이야기들이다. 당연히 '같은 생각'이라 여기고 '없는 이야기'까지 마구 쏟아놓는데,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많다.

정부가 이들의 어려움을 모르겠는가? 매일같이 들여다보는 것이 여론이고, 조사고, 지표들이다. "알면 뭐하냐? 뭐 좀 화끈한 것을 내어 놓아야 하지 않느냐" 하겠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수십 년 묵은 구조적인 문제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데다, 복잡한 이해관계로 일이 더욱 어려워지는 경우도 많다. 최선을 다 하고 있고, 머지않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확신하지만 어느 누구도 단기간에 확 바꿀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한 가지 예가 되겠지만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소비부분을 한번 보자. 적극적인 감세정책으로 중산층이상의 구매력을 높여야 된다는 주장 등, 다양한 제안들이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쉽게 수용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잘 알다시피 소비부진 문제는 기본적으로 우리경제의 '양극화 문제'나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소비 인프라 등, 구조적인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즉 의료, 교육, 레저 등은 인프라 자체가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잘 사는 '윗목' 사람들은 소비할 데가 없고, 못사는 '아랫목' 사람들은 구매력 자체를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병원과 학교, 골프장을 찾아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반면, 가계 빚에 눌려 쓸래야 쓸 돈이 없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놓고 일시적 처방으로 내수를 살리면 얼마나 살릴 수 있겠는가? '반짝' 하는 효과가 있기도 하겠지만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 앞서 이야기한 적극적 감세정책만 해도 오히려 양극화 현상을 더욱 심화시킬지도 모른다. 결국, 산업구조 조정을 통하여 성장부문과 비성장부문의 기능적 연계를 강화하고, 이와 같은 새로운 산업구조에 맞는 인력양성을 위한 교육훈련 프로그램 등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는데, 하나 같이 하루이틀만에 되는 일은 아니다. 소비 인프라를 정비하는 작업을 하는 등, 최선을 다 하고 있지만 묵고묵은 문제인 만큼 그 나름대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예가 되겠지만 정부가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는 중소기업 문제도 그렇다. 고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데다 양극화 문제 해결의 관건이 되는 만큼 정부로서는 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당장 효과가 있는 무엇을 내 놓으라면 답답해진다. 중소기업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금융체제와 금융관행, 잘못된 세제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낮은 투명성 문제, 그리고 보다 본질적으로는 글로벌 차원에서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경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서 나타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곳저곳에서 단기처방들을 내어 놓지만 대부분 '산소호흡기'나 갖다 꼽고 보자는 것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오히려 해가 되는 제안이 더 많다.

투자 부분도 마찬가지다. 지난 10년 간 기업과 정부 모두 새로운 성장 아이템을 찾는 데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고, 노사관계에 대한 걱정도 여전하다. 앞서 이야기 한 중소기업 문제와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이지만 보수적인 금융관행과 기업의 낮은 투명성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투자를 활성화 할 수 있는 금융관행이 만들어져야 하나 우리 형편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은행은 보수적인 경영을 계속하고 있고, 은행이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면 대출에 따른 위험부담을 줄여주는 보증시스템을 발전시키거나, 진취적인 성향을 띠는 자본시장을 잘 육성했었어야 하는데, 이 또한 그렇지가 못하다. 또 기업의 낮은 투명성은 이러한 문제를 더 어렵게 한다. 투명성이 낮으니 올바른 금융관행이 만들어지기 힘들고, 새로운 투자환경을 만들 수 있는 M&A도 제대로 진행될 수 없다.

▶ 과거사와 정치논쟁에만 매달리는 청와대?
청와대가 과거 이야기나 정치논쟁만 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는데, 이야말로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일이다. 정작 청와대 안에서는 과거사 문제나 국가보안법 문제를 두고 심각한 회의 한번 한 적 없다. 시대정신에 따라 그 필요성을 천명한 것이고, 정치권이나 사회일반에서 공론화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그러한 문제는 어차피 대통령이나 행정부보다는 정치권이나 시민사회가 새로운 시대정신과 역사정신에 따라 정리해 나가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난 후 정부에서 일어난 회의를 분석해보면 알겠지만 가장 큰 관심은 경제이다. 5~10 년 뒤 우리가 무엇을 먹고 살 것이며, 이를 누가 어디에서 생산하고, 또 생산의 틀을 누가 어떻게 만들 것이며, 정부가 이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큰 신경을 쓰고 있다. 부패방지와 정부운영의 투명성 확보, 전자정부의 확대와 자율과 분권체제의 도입 등 각종 혁신작업도 우리 사회의 잠재 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작업이다.

정부가 하는 일이 눈에 잘 띄지 않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는데, 일하는 방식과 내용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것도 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사실, 참여정부는 단기처방을 강조하기보다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고,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기업과 지역사회 등, 경제주체들의 혁신역량을 키우거나 환경을 개선하는 일을 중시한다. 지방중소기업 육성과 지역경제 활성화만 해도 중앙정부가 하나하나 챙겨가며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지방정부가 스스로 지역혁신 계획을 짜도록 유도하고, 지역단위에서 지속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지역혁신 체계가 갖추어지도록 유도한다. 지역단위의 혁신 클러스터를 형성하기 위해 대통령이 전국을 순회하는 것도 그 한 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는, 또 경제주체의 자주적인 혁신역량 강화가 있지 않고서는 우리 경제가 나아질 수 없다는 확신 때문이다. 대통령의 지역 순회방문을 과거에 있었던 '순시'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들 눈에는 이것이 경제활동으로 인식되기가 힘이 든다.

과학기술 정책과 미시 산업정책 기반을 크게 강화하는 것도 참여정부가 하고 있는 중요한 일의 하나다. 이 또한 우리 경제와 기업의 혁신기반을 마련하는 일이라 하겠는데, 과학기술부장관을 부총리로 승격시켜 과학기술관련 예산과 정책을 총괄하게 한 것도, 황우석 박사와 같이 뛰어난 연구자를 특별히 챙기고 있는 것도 다 이러한 맥락에서다. 이 역시 대단히 중요한 일이지만 거시경제 중심의 사고를 지녔거나 단편적인 시각으로 단기처방만을 찾아다니는 사람들 눈에는 경제관련 활동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경제성장에 필요한 인적자본 육성을 위해 노력하는 일,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국제적인 협력체계를 강화하는 일, 중소기업의 투명성 제고를 방해하고 있는 잘못된 세제를 고치는 일, 정책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정책품질 관리 방안을 마련하는 일, 국가통계 역량을 강화하는 일, 금융허브 건설 등 동북아 중심으로의 도약을 위한 기초를 마련하는 일, 부동산 안정화 대책을 마련하는 일, 새롭게 성장동력이 되는 분야를 발굴하여 산업화 하는 일, 등 정부가 챙기는 일은 끝이 없다. 이러한 일 하나하나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는 다시 이야기할 필요없다. 세제 하나 고치고, 통계역량 제대로 강화하는 데에만도 몇 년이 걸릴 판이다. 과거 정부들이 몰라서 안 한 것이 아니라 아예 '불가능한 일'이라 여기고 못한 일들이다. 정부 출범 이후 하루도 쉬지 않고 고민하고 계획하고 고치고 하면서 해 온 일이다. 이를 두고 경제를 챙기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야당이나 일부 언론이 때로 참여정부가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이들이야말로 우리 경제의 문제를 잘 모르고 있거나 매우 안이하게 보고 있다. 구조적인 문제를 단순한 일시적 현상으로 보거나, 한두 가지 정책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보고 있는 것 같다. 실제 효과에 있어서는 큰 문제가 되지도 않는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두고 마치 경제를 살리는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집착하고 있는 것 등이 그 한 예다. 무엇을 먹고 살 것이며, 이를 어디서 누가 어떠한 생산체계에 의해서 생산해 나가게 할 것인가? 양극화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 실제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는 잘못된 금융관행과 세제, 그리고 그로 인한 중소기업의 낮은 투명성 문제 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시장을 통한 자연스러운 분배와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고급 소비인프라를 어떻게 만들며, 지속적인 혁신과 성장을 가능케 하는 인적자본의 육성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등에 대한 이들의 진지한 고민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정부가 하고 있는 고민을 뒤집어 전달하고, '좌파' 운운하며 정책의 본질을 흐려 놓기 일쑤다.

'좌파'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보탰으면 한다. 얼마 전 어떤 분이 시중에 "적화통일 중에 적화는 끝났고 통일만 남았는데 며칠 뒤 김정일이 걸어서 내려오면 끝나게 된다"는 이야기가 돌아다닌다고 전해 주었다. 정말 악의적인 이야기다. 실제 무엇이 좌익정책인지 물어보면 기껏 국가보안법 폐지,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유지, 사립학교법 개정 정도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제는 매매춘 단속까지 대표적 좌익정책이라 이야기하고 있으니 찾기가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갑작스럽게 강화된 매매춘 단속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까지 '좌' '우'로 이야기해야 되는가? 만일 이것이 '좌'라면 매매춘 단속은 물론 한때 술까지 마시지 못하게 했던 미국과 같은 나라는 어떻게 되나?

답답한 마음에 참여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과 한나라당의 공약을 비교해 보았다. 아무리 봐도 좌익이면 같이 '좌익'이고, 우익이면 같이 '우익'이었다. 도대체 세상 어디에 상공회의소·전경련 직원을 파견 받아 규제개혁단을 만들고, 기업이 원하는 규제혁파를 해 보라고 하는 '좌익정부'가 있다는 말인가? 오른쪽 왼쪽을 구별 못하는 태생적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볼 수밖에. 국가보안법 폐지나 출자총액제한제도 같은 것도 그 나름대로의 시대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지, '좌' '우'를 함부로 논할 사안은 아니다. 또 설령 굳이 '좌'로 우긴다 해도 그 이외의 나머지 수백, 수천의 정책을 봐야 하지 않는가? 명동 한가운데에서 파키스탄 사람 몇 사람 봤다고 우리나라를 파키스탄이라 부를 것인가? 오른쪽 왼쪽을 구별하지 못하는 눈으로 '서울 시내 한 가운데 인공기가 펄럭일 것'이라는 등, 가당치도 않은 말을 만들어내며 국민을 위협하고 국가 신인도를 떨어뜨리는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소 빗나가는 이야기지만 주식시장을 보면 외국인 투자자의 지분이 계속 확대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국내투자자와 외국투자자가 우리 경제의 미래를 달리 보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달리 이상할 것도 없다. 10년을 하루같이 경제위기론과 안보위기론을 보도하는 주요 신문을 보고서 어떻게 우리 스스로 '디스카운트'를 하지 않겠는가? 이 글을 정리하는 순간에도 주요 언론들이 2004년도 들어 11위가 내려간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순위를 대문짝만하게 보도했다. 탄핵정국이 진행되는 시점에서 설문을 통한 국내 기업인 등의 주관적 판단을 근거로 조사된 것이다. 예컨대 야당이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탄핵한 마당에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최고조에 달했고, 정치 불신은 당연히 최하위를 기록할 것이다. 이른바 '차떼기' 등 대선자금 수사가 끝날 즈음이었으니 부패지수 역시 최고 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쁠 수밖에 없는 것인데도 제대로 된 조사 방법이나 과정 등 배경설명 없이 '대단히 반가운 소식'인양 보도 하였다. 어느 양식있는 언론인이 이를 두고 일부 보수 언론의 한국경제에 대한 자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국제경영개발원(IMD)지수 등에서 국가경쟁력 순위가 올라갈 때는 조용했다가 순위가 내려갈 때는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치니 국민이 불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달라진 권력문화, 달라진 정부
전 청와대 부속실장이 청주에서 업자들과 술을 마신 일로 세상이 시끄러울 때 어느 신문이 부속실장이 얼마나 '실세'인가에 대한 글을 실었다. 저녁이면 그 누구도 찾지 않는 관저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쥔 대통령에 접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막강한 '실세' 권력 등의 이야기였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의 청와대 모습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황당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분권과 자율의 원칙'과 '시스템에 의한 국가운영'이 강조되면서 이미 청와대는 과거의 청와대가 아니다. 국정원이나 검찰 같이 힘의 원천이 되던 권력기구들도 대통령이나 청와대의 손을 떠나 제 자리로 돌아가고 있고, 이리 저리 나누어주던 통치자금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실세'란 개념도, 자의적인 권한행사도 있을 수 없다.

구시대적 문화에 젖은 사람들이 여전히 청와대를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곳으로 인식하고, 또 '실세'가 누구인지를 찾아 이사람 저사람 이름을 입에 올리는 동안에도 우리 국가의 권력구조와 그 운영체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때로 '국가기강' 운운하며 다시 강력한 권한행사를 주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참여정부의 '자율과 분권' 원칙과 '시스템에 의한 국가운영'의 철학은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글로벌 경쟁체제와 지식정보사회에 있어 우리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자율과 분권을 강조하는 속에 새로운 형태의 국정운영 체계가 마련되고 있다. 총리실의 기능강화와 각종 국정과제위원회의 활성화에서 보는 것처럼 획일적인 지시·통제체제를 대신할 협의와 조정 메커니즘이 정비되고 있으며, 평가체제의 강화 등 '자율과 분권'에 상응한 책임성 확보 메커니즘이 확립되고 있다.

아울러 '권력'을 기반으로 하는 권위주의적 '통치' 대신 국민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협치'의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통령의 과거사 청산 관련 발언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본다. 우리 역사의 진실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고, 국가권력이 과거의 잘못을 있는 그대로 밝힐 때 '협치'의 바탕이 되는 국민적 신뢰가 확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구조와 그 운영에만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기관 곳곳에 과거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총액배분 자율편성 예산제도'가 도입되면서 각 부처의 예산편성권이 획기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예산철만 되면 빈 공간을 찾을 수 없었던 기획예산처 주차장이 올해는 한산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장관들조차 만나기 힘들었던 기획예산처장관이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를 직접 찾아다니며 국가재정 계획과 새로운 예산제도를 설명하고 다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정보통신부와 같은 경우 이 제도 하나로 기존 단위예산 사업을 17%나 폐지하는 혁신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외에도 국방부에는 문민화와 함께 국방행정의 전문화 바람이 대대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행정자치부가 지니고 있던 인사기능이 중앙인사위원회로 이관되면서 정부 내에서도 '인적자본 축적' 차원의 새로운 인사행정 바람이 불고 있다. 또 앞서도 이야기 하였지만 혁신주도형 경제 및 산업정책 추진을 위해 과학기술 행정체계를 전면 개편하였고, 행정의 효율성과 책임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국가평가 인프라가 감사원을 중심으로 구축되고 있다. 재정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보장할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예산회계가 구축 중에 있으며, BRM(Business Reference Model, 기능연계모델)을 비롯하여 세계 최고의 전자정부를 만들기 위한 작업들이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 이 외에도 지방양여금과 국고 보조금의 정비를 포함한 국가재정제도의 개혁, 인사행정의 혁명이라 불리는 고위공무원단 제도의 점진적 시행, 등 정부가 추진해 온 개혁작업은 끝이 없다.

정부가 하는 일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일들이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하리라 믿는다. 총액배분 자율편성 제도와 국방행정의 전문화 등은 과거정부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과제였다. 인적자본 축적을 위한 인사행정 체제의 개편이나 과학기술 행정체계의 개편 또한 알면서도 못하고 있던 과제들이었다. 신행정수도 건설이나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버금갈 정도의 어려운 과제들도 숱하게 있다.

이러한 일을 하고도 정부는 흔히 "하는 일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잘못된 정치자금 관행과 선거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고도 '부패정권'이라는 욕을 듣고, 과거 어느 정부보다 강력한 규제개혁을 추진하면서 '좌파 정권'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억울할 것은 없지만 최소한 왜곡된 정보들을 확대 재생산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왜곡된 정보로 우리 스스로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디스카운트하며 자해하는 사이, 우리에 대한 세계의 평가 또한 낮아지게 된다.

▶ 맺으면서: U-형 커브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됐을 때 '후보가 되는 것보다 후보지위를 지켜가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를 드린 적이 있고, 대통령 당선 직후에도 안정적 국정운영이 쉽지 않으리라 짐작한 바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선거에는 일반 대중이 참여하여 그나마 조금은 우리사회의 주인 노릇을 하지만, 선거가 끝나게 되면 우리사회는 대부분 다시 기득권 세력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기득권 내의 반 노무현 정서를 생각하면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인가는 자명한 일이었다. 선거 때처럼 비교할 상대후보라도 있으면 그나마 덜 공격받겠지만 비교대상조차 없는 상황에서는 그 조차도 안 된다.

그러나 분명히 나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미 이야기한 바 있지만 참여정부에 대한 지지도는 U-형 커브를 그리게 될 것이다. 취임직후에는 표를 찍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자기합리화'의 입장에서 지지를 표명하지만 개혁작업이 시작되고 기득권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표를 찍었던 사람들에게까지 일종의 회의론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정부가 일관된 입장으로 국정을 운영해 나가고, 왜곡된 정보의 진상이 드러나게 되면 국민적 이해는 다시 높아질 것이다.

과거와 달리 현 정부 아래에서는 각종 회의를 포함하여 대통령과 정부의 활동이 하나하나 체계적으로 상세히 기록되고 있다. 대통령의 지시사항 하나하나가 코드 넘버가 붙어 관리되고 있으며, 정책관련 자료도 작성의 배경과 보고과정 등이 상세히 기록되고 있다. 먼 훗날 이들 자료는 대통령과 정부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를 상세히 보여줄 것이다. 지금 당장에는 만들어져 돌아다니는 각종의 왜곡된 정보들이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를 만드는 것은 이러한 왜곡된 정보들이 아니라 이 순간에도 하나하나 기록되고 있는 사실자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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