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이전 위헌]盧대통령 또 위기… 어떻게 나올까

  • 입력 2004년 10월 21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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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다시 위기의 수렁에 빠졌다. 21일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린 ‘수도 이전’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노 대통령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해 온 정책이었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수도 이전에 대해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하겠다”거나 “행정수도 이전 반대를 나에 대한 불신임 운동으로 느낀다”고 말했다. 따라서 헌재의 위헌 결정은 단순히 수도 이전이 무산됐다는 ‘정책 좌초’의 의미를 넘어 정권 운영에 치명타가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은 이 문제로 수도권의 지방자치단체 및 한나라당과 끊임없이 각을 세워왔기 때문이다.

또 수도 이전과 맞물려 있는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포함한 지방균형발전 전략의 전반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지난해 10월 13일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한 지 꼭 1년여 만에 그보다 더한 새로운 위기정국에 빠진 것이다. 올해 3월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로 2개월 동안 직무정지를 당한 것까지 포함해 임기 1년8개월 만에 세 번째 위기를 맞은 셈이다.

문제는 노 대통령이 이번의 정치적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 선택지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노 대통령이 정면 돌파의 승부수를 던지려면 수도 이전을 헌법에 명문화하는 개헌 절차를 밟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국민투표에 앞서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된다는 점에서 정면 돌파 카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설사 야당의 동의를 얻어 국민투표에 들어가더라도 현재의 여론지지도에 비춰볼 때에는 말 그대로 자신과 정권의 명운까지 흔들리는 자충수가 되기 쉽다.

이 때문에 차제에 권력구조 개편까지 모두 포괄하는 ‘개헌 드라이브’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이 역시 야당의 동의가 선결조건이다.

실제 이날의 청와대 기류도 이번 헌재 결정을 노 대통령의 거취로 직결시킬 문제는 아니라는 쪽이었다.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자신에 대한 신임 문제로 거론한 적은 있지만, 이번 헌재 결정을 이유로 자신의 거취 문제까지 고려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렇다고 노 대통령으로서는 그냥 주저앉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정치적, 지역적으로 복합적인 대결전선이 형성돼 있는 수도 이전을 핵으로 밀어붙여온 지방화 전략을 포기할 경우 급속도로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에 빠져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비롯한 4대 법안의 처리 문제로 현 정부의 국정운영 방식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수도 이전까지 포기할 경우 ‘식물정권’의 상태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내년 4월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국회 과반선까지 무너질 가능성이다. 이 경우 현 정권의 각종 정책 추진력은 사실상 ‘0’ 상태에 빠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일단 노 대통령은 다음주에 열릴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회의, 국무회의 등을 거쳐 신중하게 대응 방침을 정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특유의 승부수를 던지며 정면 돌파하기도 여의치 않고, 그렇다고 그냥 물러설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상당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어 노 대통령의 장고(長考)는 길어질 수밖에 없을 듯하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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