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이전 위헌 결정이후]盧대통령의 카드는…

  • 입력 2004년 10월 22일 18시 08분


노무현 대통령(오른쪽에서 두번째)이 22일 청와대에서 ‘교육훈련을 통한 공무원 역량 강화 방안’을 주제로 한 국정과제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장차관은 교육을 통해 모두 혁신전문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박경모기자
노무현 대통령(오른쪽에서 두번째)이 22일 청와대에서 ‘교육훈련을 통한 공무원 역량 강화 방안’을 주제로 한 국정과제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장차관은 교육을 통해 모두 혁신전문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박경모기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향후 정국 타개책을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노 대통령의 표현대로 ‘정권의 명운(命運)을 걸고’ 추진했던 수도 이전 작업이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됐으나 정작 뾰족한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헌재의 결정에 승복 못하겠다는 격앙된 목소리가 반사적으로 여권에서 터져 나오는 것도 그만큼 위기감이 절박하다는 상황 인식 때문이다. 앞으로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1. 충청개발 代案 제시▼

헌재의 위헌 결정이 내려진 21일 밤 개최된 열린우리당 긴급 의원총회에선 “헌재 결정은 수도 이전을 하지 말라는 것이므로 충청도에 수도의 기능과는 다른 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느냐”는 얘기가 나왔다.

수도 기능을 담지 않은 다른 도시를 대안으로 건설해 충청권을 배려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노 대통령으로선 야당의 반대와 헌재의 결정 때문에 수도 이전을 포기한다고 해도 어떤 방식으로든 충청권을 감싸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02년 대선 때 ‘행정수도 이전’을 내세워 받은 표가 집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물론 2007년 차기 대선에서도 이 지역표의 향배가 캐스팅보트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균형발전’이란 명분 아래 충청권에 집중적인 정책적 지원을 할 가능성이 많다.

문제는 이 경우에도 현실적 대안이 마땅치 않다. 수도권과 충청권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 만들기로 했던 기업도시를 충청도로 옮기는 방안은 민간 자율사업이란 점에서 ‘관치(官治)논란’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일부 행정부처를 충청권에 옮기는 방안도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행정기능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2. 4대법안 처리 强攻▼

헌재의 위헌 결정에 수긍할 수 없다는 논리를 계속 펴면서 올해 정기국회 안에 통과시키기로 천명한 ‘4대 법안’을 더욱 강력하게 밀어붙일 가능성도 예상된다.

헌재 결정에 깨끗이 승복하지 않고 위헌 결정의 이론적 근거인 ‘관습헌법’의 문제점을 여권이 줄기차게 제기하고 나오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 경우 다가오는 재·보궐선거에서 충청도의 세 결집을 다지면서 현 정권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을 알려 지지표를 결속시킬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비록 수도 이전 문제는 헌재의 결정으로 무산됐지만 국가보안법 폐지안과 과거사 법안, 사립학교법안, 언론관련 법안을 강력히 밀어붙여 여당의 ‘정체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과 전면전을 불사해야 한다는 점은 대화와 타협을 강조해 온 여권의 국정 운용 방침과는 어긋난다. 따라서 여론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자칫 4대 법안까지 야당의 힘에 밀릴 경우 노 대통령이 일찌감치 ‘레임덕(집권말기 증후군)’ 현상에 빠져 ‘식물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인식 때문에 여권 지도부는 “수도 이전 문제와 4대 법안 처리는 별개 문제”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강공 가능성을 일단 열어놓고 있다.

▼3. 개헌으로 정면 승부▼

위기 때마다 정면 돌파를 택해 온 노 대통령의 승부사적 기질에 비춰볼 때 수도 이전 추진을 위해 ‘개헌 카드’를 던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한 수도 이전이 노무현 정부의 핵심 정책이라는 점에서 헌재 결정을 자신에 대한 불신임으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개헌 카드는 노 대통령으로서 헌재의 위헌 결정에 대한 압박감을 한꺼번에 털어내고, 정국위기 또한 일거에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이지만 정국은 정면대치와 파행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수도 이전이 개헌까지 불사하면서 추진해야 하는 시급한 사안이냐는 논란에 휘말릴 수 있고,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 국회 통과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수도 이전 추진을 위한 개헌의 명분을 얻기 위해 개헌 내용에 권력구조 개편까지 포함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주변 참모들도 “노 대통령은 임기에 연연하지 않고, 대통령으로서 무엇을 했느냐는 명분을 중시한다”고 얘기하고 있어 이 카드를 집어들 가능성도 일각에선 점치고 있다.

그러나 집권 초기에 비해 지지도가 떨어진 상황에서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승부수는 자멸의 악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4. 헌재결정 전면수용▼

헌재의 결정을 겸허한 자세로 수용하고 한나라당과 대화를 통해 상생(相生)의 기조로 정국을 운영함으로써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바꾸는 경우다.

여권이 헌재의 판단을 부정하는 모습이 자칫 법치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비쳐 집권기반을 더욱 취약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평상의 정치를 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차피 헌재의 결정을 바꿀 수는 없는 만큼 대승적 차원에서 국정운영의 큰 틀을 변화시키고 한나라당을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 추락한 국정 지지도를 회복하자는 ‘현실론’인 셈이다.

이 경우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접점인 4대 법안 문제도 한나라당과의 적절한 타협 속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 시나리오는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과 정치 철학의 전면적인 변화를 동반해야 한다.

특히 한나라당에 대해 수구부패 집단으로 각을 세워 온 열린우리당 내의 소장 진보파 의원들의 반발이 거셀 것이 분명하고 전통적인 지지층의 이탈을 각오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따라서 실현 가능성은 낮다.

아무튼 노 대통령은 수도 이전이 자신의 진퇴까지 거론하면서 집착했던 사안인 만큼 가까운 시일 내에 그 심리적 공허감을 어떤 방식으로든 직접 표출할 것으로 보인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이 훈기자 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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