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포기 대가 지불능력 있나▼
얼마 전 통일부 장관이 ‘북핵문제 해결 논의를 위한 남북정상회담 추진’ 가능성을 제기했다. 11일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북핵문제는 구조적으로 안정되어 있다”고 하더니 그 다음 날 여당 대표는 ‘대북 특사 파견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나섰고, 야당대표도 덩달아 “초당적으로 특사역할을 맡을 용의가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우리 정치지도자들은 북핵문제의 향방을 ‘민족공조’의 틀을 통해 바꿔놓을 수 있는 단순 구조로 보고 있든지, 우리가 핵 포기의 대가를 지불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든지,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진전을 동일 수준의 것으로 보든지 어느 한쪽인 것 같다.
이에 반해 북한은 전 미 국무부 북한담당관 케네스 퀴노네스 박사의 말처럼 김영남(전략총괄팀), 김계관(협상전담팀), 정태영(인도적지원확보체계운용팀)을 주축으로 한 3두체제 ‘환상의 팀’을 운용하고 있으며, 핵에 관련된 분명한 전략적 목표를 세워놓고 이들로 하여금 효율적인 전술을 구사해 나가도록 하고 있다. 그들의 핵관련 전략전술, 그리고 협상운영체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목적지향적이고 철저히 계산적이라는 것이다.
북한 핵전략의 최종목표에 대한 전문가의 시각은 ‘파키스탄식 모델(핵보유국가 위상 확보)’이라는 견해와 핵 프로그램을 ‘체제생존 및 경제보상’과 맞바꾸려 한다는 ‘실용주의 거래’ 모델로 나뉜다. 그런데 현시점에서의 문제는 김정일 위원장의 최종목표 설정 수준뿐 아니라 중간단계의 전략목표와 그 추진 과정의 ‘기만적’ 성격이다.
북핵문제의 심각성이 부각되고 협상이 지연되는 현실을 북한은 자신에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문제다. 이 과정에서 김정일 개인권력은 더욱 견고해지고 있으며 북핵 해결을 바라는 주변국들로부터 ‘엄청난’ 인도적 지원과 에너지를 얻어내고, 군사력을 견지·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북한은, 자신은 협상의 문을 열어놓고 있는데 미국의 ‘적대시 정책’ 때문에 희생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미 대통령의 자극적 발언과 ‘네오콘’의 강성노선이 표출됐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제3차 6자회담에서 미국은 한국 및 일본과 조율을 거쳐 북한의 안전보장을 위한 다자간 협정을 포함한 포괄적이고 타협 가능한 제안을 내놓았고 이에 따라 북한과 차기 회담의 속개에 합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 북한은 6자회담 재개 자체를 무산시켜놓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민족공조’를 강조하면서 북핵문제의 책임이 미국측에만 있다는 인식을 조성해오고 있다. 최근 우리 정치인들의 ‘민족공조 해법’ 관련 언동도 북한의 이런 전략전술의 영향과 무관치 않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韓美공조 힘써야▼
‘한미공조’의 강조는 이제 한국사회에서 인기 없는 ‘각설이타령’이 돼 가고 있다. 그러나 냉철하게 보면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해 달리 뾰족한 대안이 우리에게는 없다. 특히 미국 대선 후의 대북정책 과정에서 미국의 극단적 선택을 자제케 하고 적절한 대북 협상을 하도록 유도하려면 한미간에 확실한 신뢰에 바탕을 둔 설득과 견제가 필수적이다. 또한 북한이 현실감각을 갖게 하고 ‘모험주의’를 포기하게 하려면 ‘채찍과 당근’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도 ‘김정일 환심 사기’가 아닌, 견고한 한미동맹 체계에 바탕을 둔 전략전술이 필수적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는 ‘민족공조’가 아니고 ‘한미공조’가 해답인 것이다.
김동성 중앙대 정경대학장·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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