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강원 철원군 최전방 철책에 구멍이 발견된 직후 군 당국은 합동심문조를 편성해 구멍을 만든 것이 누구의 소행인지,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한 정밀 조사에 착수했다.
북한군의 침투일 경우 1978년 중부전선에서 북한군 3명이 침투한 이후 26년 만이다.
하지만 일단 군은 침투 가능성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우선 철책의 절단 부분을 정밀 검사한 결과 북쪽에서 자른 것이 아니라 남쪽에서 자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
국방부 관계자는 “잘라진 철선에 만들어진 각도와 단면을 조사해 보면 어느 방향에서 어떤 기구를 써서 잘랐는지 파악할 수 있다”며 “현재로서는 남쪽에서 살 수 있는 철선 절단기를 사용해 철책을 잘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또 철책에 만들어진 구멍의 형태도 북한군의 소행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보통 특수부대원들은 신속한 침투를 위해 시간이 많이 걸리는 절단 과정을 최소화한다. 그래서 절단은 대부분 ‘L’ 모양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이번 철책 절단은 ‘경’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일부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또 “북한군은 보통 경계가 허술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2개 부대의 경계 지역에 침투한다”며 “이번에 구멍이 발견된 지역은 A사단의 담당지역 중 오른쪽 영역으로 인근 사단 경계선과 거리가 멀어 보안이 매우 튼튼하다”고 말했다.
더욱이 해당지역은 능선으로 산 위쪽의 남한 병사들이 산 아래쪽의 북한 병사와 비무장지대 상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곳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방부가 추정하는 ‘민간인 월북’도 설득력이 낮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민간인들이 군 초소가 아닌 산을 타고 민간인 통제선을 넘어 군사지역으로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철책 지역까지 접근한 뒤 병사들의 눈을 피해 구멍을 뚫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방지역 병사들의 전언이다.
한 전방부대 장교는 “구멍을 뚫고 민간인이 월북을 하려면 철책 구조를 잘 알고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여러 번 사전 시도를 했을 것”이라며 “철원 지역에는 부근 부대출신 민간인이 많긴 하지만 월북 시도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합참은 “사고 지점 군사분계선 인근의 북한군 부대에서는 특이한 동향이 포착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도 맞은편의 북한군 부대는 평상시와 같이 일상적인 훈련과 추수기 영농지원 활동을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연천군, 예비군동원 준비상황 점검▼
“창문을 내리고 신분증을 보여주십시오!”
강원 철원군의 최전방 철책이 절단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26일 오전 경기 연천군 연천읍 연천군청 입구 삼거리의 임시 검문소. 무장한 군인과 경찰관 20여명이 운행 중인 차량들을 세워 운전자의 신원을 일일이 확인했다. 검문소 주위에는 장갑차 2대가 세워져 있었으며 검문을 받느라 10여대의 차량이 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었다.
평소 한적하던 도로에서 장갑차까지 동원된 검문이 이뤄지자 운전자들은 “무슨 일이냐”며 놀라는 모습이었고, 철책 절단 때문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더욱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철원군과 인접한 연천군 신서면 일대에는 이날 동틀 무렵부터 마을마다 “절단된 철책 사이로 간첩이 넘어왔을 수도 있으니 수상한 사람을 보면 신고해 달라”는 방송이 반복해서 울려 퍼졌다.
군이 이날 오전 4시50분경 민통선 출입을 통제해 민통선 이북에서 농사를 짓는 연천군의 300여가구 농민은 애를 태웠다. 연천군청은 이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예비군을 즉시 동원할 수 있도록 비상연락망을 확인하는 등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연천군 관계자는 “이번 사건으로 추수철에 일손을 놓게 돼 민통선 출입 농민들이 크게 걱정하고 있다”며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별다른 동요 없이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기 파주시 지역에서는 민통선 출입 영농이 정상적으로 이뤄졌지만 군은 출입자의 신분을 철저히 확인하고 차량 트렁크까지 일일이 확인했다.
민통선 이북에 조성된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 해마루촌의 개발위원장인 조봉연씨(48)는 “주민들은 여느 때처럼 추수하느라 바쁘게 지내고 있는데 군인들의 검문이 강화돼 다소 놀랐다”고 말했다.
경기 북부지역에서 대(對)간첩작전이 벌어진 것은 1980년 3월 고양시 일산구 법곶동 한강 자유로변으로 침투하던 무장공비 3명을 백마부대가 사살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한편 경찰은 이날 강원, 경기, 서울지역 일대의 군경합동 상설검문소 54곳 외에 200여곳의 임시검문소를 추가로 설치하고 경찰관 1200여명을 동원해 차량 검문활동을 벌였다.
서울지방경찰청은 112타격대 등 경찰 소속의 모든 작전부대에 출동 태세를 강화하라고 지시했으며 버스터미널, 철도역, 숙박업소 등에서 순찰 및 검문검색을 실시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대(對)테러 경계활동의 일환으로 정부기관과 주요 외국공관 등 235개 주요시설에 5000여명의 경찰력을 배치했다”며 “간첩 침투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당장 비상경계령을 내려 즉각 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연천=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정원수기자 needjung@donga.com
:진돗개 하나:
26일 군이 발령한 ‘진돗개 하나’는 대(對)간첩작전 중 가장 높은 단계로, 간첩이 침투하는 현장을 포착하거나 명확한 침투 흔적을 발견했을 때 발령한다. 평소엔 ‘진돗개 셋’을 유지하며, 간첩 침투 징후가 나타나면 ‘진돗개 둘’이 발령된다. ‘진돗개 둘’ 이상이 발령되면 군부대는 담당 지역에 대한 수색 및 야간 매복 활동을 실시하고, 경찰은 군과 함께 주요 지역에서 검문검색을 벌인다. 필요에 따라 예비군도 동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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