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가 26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내년도 예산규모를 늘리겠다며 재정확대 정책을 밝힌 데 대해 한나라당이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 국회 심의과정에서 진통이 예고되고 있다.
▽‘내년 성장전망 어두워 재정확대 정책 불가피’=여당이 국회의 내년도 예산심의를 앞두고 당정에서 이미 합의한 내년 예산규모를 늘리겠다고 선언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천 대표가 재정확대 카드를 꺼낸 것은 내년도 경제성장률이 당초 기대보다 낮은 4%선에 머물 것으로 관측되는 데다 꽁꽁 얼어붙은 내수가 풀릴 기미조차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당내에선 재정경제부 장관 출신의 김진표(金振杓) 의원과 강봉균(康奉均) 의원 등이 재정확대 정책을 통한 경기진작 방안을 꾸준하게 제기해 왔다.
김 의원은 “최근 수 년 동안 정부는 재정의 단기균형에만 집착해 재정을 너무 소극적으로 운용해 왔다”면서 “지금과 같이 가계와 기업 부문의 경제심리가 모두 위축된 상황에선 재정을 통한 경기진작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정책위 관계자도 “내년도 성장률이 4%대로 뚝 떨어지고 경기회복 기미도 향후 3∼4개월 안에는 전혀 보이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그대로 방치할 경우 심각한 상황에 이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규모 용처 둘러싸고 논란 일 듯=당정이 합의해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규모는 일반회계 기준으로 올해(127조원)보다 9.5% 늘어난 131조5000억원이다.
수차례의 당정협의 끝에 합의안을 만들어내긴 했지만 열린우리당에선 당초 134조원으로 늘리자고 한 반면 기획예산처에선 130조원에 그쳐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열린우리당 내에선 국회에 올라와 있는 131조5000억원에다 적어도 3조∼4조원은 더 늘려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민간소비와 건설투자가 살아날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데다 고유가와 원화절상 압력, 정보기술(IT) 경기 하락까지 겹쳐 마치 삼각파도에 휩싸인 듯 험난한 상황을 맞고 있기 때문에 돈을 풀지 않고는 경기가 곤두박질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문제는 재원을 조달할 방법이 없어 결국은 적자국채를 더 찍어야 한다는 점에 있다.
한나라당 이한구(李漢久) 정책위의장은 “혈세를 퍼붓는 식의 임기응변적 조치로는 경제가 살아날 수 없다”면서 “김대중(金大中) 정부에서 매년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하는 등 재정지출을 확대하면서 국가 빚이 늘어 결과적으로 몇 년 뒤 다시 세금을 늘리는 악순환이 이어졌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며 예산확대 방안에 반대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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