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反엘리트주의, 反지성주의

  • 입력 2004년 10월 29일 18시 32분


노무현 정부 출범 이래 가장 두드러진 사회변화는 반(反)엘리트주의, 반(反)지성주의의 표출이라고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가 진단했다. 서울대 교수협의회 토론회에서 나온 이 교수의 비판은 우리 사회에 묵직한 화두(話頭)를 던진다.

부당한 특권과 차별을 빚는 왜곡된 엘리트주의라면 사라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 교수의 지적대로 ‘지적 도덕적인 결손을 지닌 집권 386세대’가 국제정세에 무지한 채 ‘개혁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행사하고 그 사이 국가경쟁력은 추락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반엘리트주의는 지식인을 공격하고 주류세력을 교체하는 이념적 무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지금 한국사회 곳곳에서 반엘리트주의, 반지성주의가 목도되고 있다. 대통령에 이어 국무총리가 ‘막말’을 쏟아내 나라의 품격을 떨어뜨렸다. ‘청와대브리핑’을 비롯한 인터넷공간의 폭언, 비속어는 ‘디지털 민주주의’가 아닌 ‘저주의 굿판’을 연상시킨다. 고교평준화를 고집하고 수능 점수제 폐지로 사실상 ‘대학 평준화’를 실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의견이 다르면 적으로 보는 정치권의 풍조가 퍼지면서 정재계는 물론 학계와 종교계, 헌법재판소의 권위까지 훼손됐다.

권위에 대한 도전은 민주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그러나 세계는 이미 지식기반사회로 들어섰다. 우수한 인적자원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한다. 인재가 제 능력을 발휘하는 국가를 운영하려면 국정담당자들은 더 뛰어나야 한다. 인재를 길러 내는 교육은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모든 권위와 실력을 부정하고 맹목적 평등만 추구한다면 대한민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능력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는 진정한 엘리트주의가 배격돼선 안 된다. 그 결실이 전체 구성원에게 돌아와 사회발전을 이끌기 때문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반엘리트주의, 반지성주의를 조장하는 것은 ‘역사의 반역’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 정부가 추진하는 정치적 방식의 역사청산은 역효과가 날 것이므로 학계가 주도권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 교수의 제안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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