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밖에 독자권익위원회와 고충처리인을 두도록 의무화한 것도 신문제작에 대한 외부의 개입과 간섭을 일상화할 수 있는 대표적 조항으로 꼽힌다. 이 같은 일련의 규제시스템은 언론자유에 대한 제약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많다. 특히 정치적 성향이 강한 시민단체가 국가권력을 대리해서 특정 비판신문에 대한 직간접적인 압력을 가할 수 있는 길을 터주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신문사 자율권까지 넘보는 것은…
여당의 정기간행물법 개정안(신문법안)은 일간신문에 10명 이상 30명 이내의 독자로 구성되는 독자권익위원회를 두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그중 과반수는 ‘각계의 독자를 대표할 수 있는 자’ 중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구성되는 편집위원회가 정하는 단체가 추천하는 자’를 위촉하도록 했다. 독자권익위원회 구성까지 신문사의 자율적인 영역 밖에 있는 셈이다. 위원회를 구성하지 않을 경우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까지 부과하도록 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신문사도 기업이고 신문도 상품인 만큼 소비자인 독자의 의견은 절대적이다. 따라서 지금도 각 신문사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율적으로 유사한 형태의 기구를 두고 있는데, 굳이 독자권익위원회란 것을 법으로 강제하려는 것은 정부가 이 기구를 통해 신문사에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독자위원 추천권을 가진 ‘단체’의 개념이 모호해서 더욱 그렇다. 일부 시민단체를 염두에 뒀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출석요구도 할 수 있는 자문기구?
독자권익위원회는 명목상으로야 자문기구이지만 법안에 규정된 권한은 자문의 범위를 크게 벗어난다. 독자 권익보호와 침해구제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편집규약 및 편집·제작된 기사에 대한 의견까지 제시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엔 신문사에 자료제출과 관계자 출석·답변을 요청할 수도 있다. 그러나 편집책임자 임면과 편집방향 등에 관한 사항을 담도록 한 편집규약에 대한 의견 제시는 사실상 경영 간여를 허용한 것이고 이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자료제출 및 출석·답변 요청권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임상원(林尙源·신문학) 고려대 명예교수는 “소비자인 독자에게 이런 권한을 부여한 입법례는 어디에도 없다”며 “신문이 자율적으로 할 일까지 공권력이 개입하는 건 명백히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강경근(姜京根·헌법학) 숭실대 교수는 “집을 사고팔면서 반드시 이웃의 의견을 듣도록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언론자유 침해 이전에 사유재산권 침해”라고 말했다.
●고충처리인인지 ‘언론조사관’인지…
여당의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언론피해구제법안)에는 고충처리인이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제도가 등장한다. 이 또한 보도로 인한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고 신속히 구제하기 위해 그동안 언론사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해 온 옴부즈맨 제도를 법제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제도도 독자권익위원회와 똑같은 안고 있다. 언론사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고, 지금도 하고 있는 일을 왜 여당이 법으로 강제하려고 나서느냐는 것이다. 고충처리인을 두지 않을 경우에도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돼있다.
고충처리인의 권한도 자문의 범위를 크게 벗어난다. 보도에 대한 시정권고 및 정정보도 반론보도 손해배상 권고뿐 아니라 언론의 침해행위에 대한 조사까지 직접 할 수 있다. ‘언론의 침해행위’라는 개념이 막연해서 고충처리인의 권한은 고무줄처럼 확대될 여지도 있다. 또한 이 법안은 각 언론사가 해마다 고충처리인의 활동사항을 공표케 함으로써 언론사는 물론 일선기자까지 심리적 중압감을 느낄 수 있다.
●“언론을 위한 법인지 의심스럽다”
형법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을 엄격히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잘못된 언론보도에 대해서는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다. 언론중재제도라는 것도 있다. 따라서 고충처리인 제도 같은 것은 권고사항이나 권장사항으로 두면 되지 법으로 강제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이재경(李載景·언론학) 이화여대 교수가 “왜 모든 걸 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이게 언론을 위한 법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을 위한 법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언론관련법안에 모호한 용어가 많은 것도 위헌 소지가 크다. ‘막연하기 때문에 무효(Void for Vagueness)’라는 원칙과 ‘지나치게 광범위하므로 무효(The Overbreadth Doctrine)’라는 원칙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위헌 여부를 가리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허영(許營·헌법학) 명지대 석좌교수는 “모호한 법률은 입법권자에 의해 얼마든지 다른 잣대가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수형기자 sooh@donga.com
조용우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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