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체제가 해체되고 새로운 동맹체제를 모색하느라 국제관계가 요동치고 있는 21세기 초의 오늘, 한반도의 운명에 치명적인 중요성을 갖는 것이 우리의 대외정책이다. 그것은 20세기 초 러시아의 동점(東漸)과 근대 군국주의 국가 일본의 등장으로 동북아 구질서가 해체되던 구한말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뿐 아니라 1945년 일제의 패망으로 한반도의 허리를 갈라 미소 두 열강이 대치하던 ‘광복 공간’에서도 그랬다.
▼대외정책에 국운 달렸는데▼
구한말에는 국제정치의 흐름을 해독하는 한 사람의 외교 전문가도 없어서 망국의 길을 걸었고, 광복 후에는 좋든 싫든 국제정치의 판국을 판독한 이승만의 경륜으로 대한민국을 수립해 오늘의 자유와 번영을 우리가 누리고 있다.
따라서 국제관계가 새롭게 재편되고 있는 오늘 우리 대외정책과 동맹외교의 추이는 앞으로 50년 또는 100년 동안 한국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이런 문제에 생각이 미칠 때마다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은 갈수록 약화되기만 하는 우리 외교통상부의 위상이다. 그것은 한국과 같이 오래 분단국가로 있다가 평화통일을 이룩한 독일과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지는 차이점이다.
전후 서독을 건국한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는 신생 공화국의 진로에서 대외정책이 갖는 중요성을 절감해 초대 외무부 장관 직을 5년간이나 스스로 겸직했다. 그 뒤에도 연립정부에서 제2당의 당수는 부총리로서 외무부 장관을 겸직해 왔다. 사민당과 기민당의 두 연립정부에 참여한 자민당의 한스 겐셔 부총리는 1974년부터 통일 이후까지 18년간이나 외무부 장관으로 재임하기도 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말의 두 차례 독일 통일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정치가는 비스마르크, 아데나워, 빌리 브란트처럼 예외 없이 외무부 장관 아니면 외교관 출신이었다.
이것은 독일에만 국한된 사례가 아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선 전통적으로 외무, 내무, 재무, 국방(혹은 법무) 등 4개 부서를 내각의 ‘고전적 부서’라 일컫는다. 외무부 장관은 총리에 버금가는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이마르공화국에서는 총리를 지낸 구스타프 슈트레제만이 죽을 때까지 5년간이나 외무부 장관을 지냈고, 2차대전 후 프랑스에서도 로베르 쉬망이 총리에서 물러난 뒤 4년간이나 외무부 장관 직을 맡아 유럽 통합의 기초를 다져놓았다. 대통령책임제의 미국에서도 수석 장관은 국무부 장관으로 불리는 외무부 장관이다.
위상이야 어떻든 우리나라라고 크게 다를 수 없다. 장관을 지낸 인물, 아니 국무총리를 지낸 인물조차 이제는 특정국의 대사로 나가고 있다. 외교부의 공관장회의에서는 그러한 총리급 대사가 장관 앞에 열석해 보고한다. 그런데 그 외교부 장관의 위상이란….
참여정부가 들어선 뒤 내각 안에는 부총리급의 ‘슈퍼 미니스터’가 부쩍 늘었다. 그 결과 개정된 정부조직법에는 유고 시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대행해 국무회의를 소집하고 주재할 수 있는 서열이 명기돼 있다. 동법 제26조 1항에 보면 행정 각부의 서열은 재정경제부, 교육인적자원부, 과학기술부 다음에도 외교부는 아니고 그 앞에 다시 통일부가 버티고 있다. 유럽의 이른바 고전적 정부 부서이자 미국 내각의 수석 부서인 외교부 장관 자리가 5위로 밀려나 있는 것이다.
▼美유럽은 수석장관 대우▼
게다가 참여정부는 수도 이전을 추진한다는 위원회, 또는 문화도시를 건설한다는 위원회의 위원장을 두루 총리급으로 예우한다는 기사도 보았다. 그렇다면 변환기의 세계에서 우리나라 대외정책의 백년대계를 마련할 외교부 장관의 위상은 또 어디쯤으로 내려가는 것인지…. 특정한 인물을 관련시켜 하는 논의는 전혀 아니다. 다만 차기 대권을 노리는 정치가라면 제대로 된 정부조직 구상을 위해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니겠는가.
최정호 객원大記者·울산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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