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적 수사(修辭)를 통해 절제된 언어를 사용하는 국무부가 동맹국 대통령의 연설 내용에 대해 공식적으로 ‘토론의 필요성’을 거론했다는 점은 북한 핵문제를 바라보는 한미간 시각차를 분명하게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미 국무부는 노 대통령의 13일 연설 가운데 어느 대목이 토론 대상인지를 적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핵과 미사일은 외부위협 억제수단이라는 북한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는 발언을 염두에 뒀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미국에서 햇볕정책의 필요성을 옹호해 온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17일 “(노 대통령의 연설문을 전해 듣고) 깜짝 놀랐다”고 충격을 표시한 것도 이 같은 짐작을 뒷받침한다.
미 국무부는 노 대통령의 연설 뒤 매일 열리는 정례 브리핑에서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국무부는 워싱턴 주재 한국특파원이 특정 사안에 대한 국무부의 견해를 물을 때 공보실에서 미리 작성해 둔 ‘성명’을 전화로 읽어주는 형식을 취한다. 이번에도 이 관례를 따랐다.
미 국무부의 이 같은 선택은 19일로 예정된 칠레 산티아고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 대통령의 연설-미국의 공식 브리핑’이라는 ‘장외 대결’ 형식을 피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언론사에 대한 답변 형식을 통해 한미간 시각차의 존재를 애써 부정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도 전달하려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 성명을 한글로 번역하면 원고지 2장이 조금 넘는 정도로, 글자 수로만 따지면 한미간 북한 핵 인식이 일치한다는 대목이 훨씬 많다.
미 정부 고위관계자는 17일 워싱턴 시내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설명회에서 익명을 전제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통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6자회담 참가국 정상들과 한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핵개발은 스스로를 고립시킬 뿐이며, 북한이 전략적 결단을 내리면 정치 경제적 혜택이 크다는 점이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참가국 정상들의 공통 견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오후 3시에 열린 이 행사는 e메일을 통해 당일 아침에 행사를 통보할 정도로 급히 마련됐다. 따라서 ‘6자회담 참가국의 한목소리’ 설명에도 불구하고 미 국무부가 공개한 ‘성명’에서 느껴지는 한미간 온도차는 내부적인 진통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워싱턴=김승련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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