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문홍]鄭東泳통일부 장관에게

  • 입력 2004년 11월 23일 18시 23분


정동영 장관께서 정치인에서 통일부 수장으로 변신한 지도 곧 5개월이 됩니다. 남북관계 주무부서의 장관으로서, 외교안보정책을 총괄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으로서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장관 취임 이후 남북관계와 6자회담 등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히 진척되는 게 없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정 장관이 그간 보여 준 ‘조용한 처신’은 일견 수긍되는 면이 있습니다. 방송기자 시절 통일부를 출입했다고 하지만, 관찰자인 기자와 전문성이 요구되는 정책을 수립 집행하는 장관의 입장은 다르다는 점도 일정 부분 정 장관의 행동을 제약했으리라고 봅니다. 입각 후 언론과의 인터뷰가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합니다.

명색이 북한담당 논설위원인 필자도 이틀 전에야 처음으로 정 장관을 만날 기회를 가졌습니다. 얼마 전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언론사에 설명하기 위해 정 장관이 마련한 자리였지요. 정 장관의 표현대로 ‘뒤늦은 언론 데뷔’ 격인 면담의 화제로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 장관과의 면담내용은 다소 실망스러웠다는 점을 솔직하게 밝히고자 합니다. 한미 두 나라가 북핵 문제의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 원칙을 확인했고, ‘주요 사안(vital issue)’으로 삼아 조기 해결의 공동 의지를 천명했다는 등 정 장관의 설명은 이미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었습니다. 핵심은 북핵 문제에서 한국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주도적 역할’을 해 나갈 것이냐는 부분인데 이에 대한 정 장관의 답변은 ‘원론’에 그친 느낌이어서 아쉬웠습니다. 결례를 무릅쓰고 말한다면 외교-안보-북한 분야에 대한 지난 5개월간의 ‘공부’로는 아직 부족한 게 아닌가 싶더군요.

정 장관은 “앞으로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 관계 진전의 병행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간에는 남북 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해 정부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주적(主敵) 개념을 삭제하려는 게 아니냐는 얘기들이 나돌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정 장관의 발언은 미진했다고 봅니다. 외교안보정책의 총책은 이런 소문의 사실 여부를 가려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두드러져 보인 것은 한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정부의 모습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미처 귀국하기도 전에 서둘러 마련된 자리에, 정 장관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부터가 그 점을 말해줍니다.

하지만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북핵 해결 과정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훨씬 멉니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자축할 게 아니라 차분하고 치밀하게 앞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외교안보 팀장’인 정 장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몇 달 전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국대사의 환영만찬에서 목격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수백 명이 참석한 만찬 도중 힐 대사가 도중에 급히 만찬장 밖으로 뛰어나가더군요. 같은 날, 같은 호텔에서 힐 대사와 정 장관과의 회동 약속이 있었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습니다. 정 장관은 미국 대사도 뛰게 만들만큼 중요한 자리에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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