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위원장은 24일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자청해 “당이 군 진급 비리 근절에 적극적으로 나설 의향이 있다”며 국정조사 검토 의사를 밝혔다. 이를 두고 청와대의 지휘 아래 여당까지 ‘지원 사격’에 나선 것 아니냐는 얘기가 정치권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느닷없이 여당의 해당 정조위원장이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을 진급 비리로 단정 짓고, ‘국정조사’ 카드까지 꺼낼 수 있다고 군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안 위원장은 기자회견 뒤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개인 자격으로 한 발언이냐’는 질문에 “당의 정조위원장 자격으로 말한 것이니 당의 입장으로 봐도 되지 않겠느냐”며 당의 공식 방침임을 강조했다. 안 위원장의 말대로라면 당이 이 문제를 사전에 충분히 검토한 뒤 입장 정리를 마쳤다는 얘기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철저한 수사라는 원론적인 언급만 있었을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한 핵심 당직자는 “안 위원장이 너무 나간 측면이 있다. 일부 내용은 개인 자격으로 말한 것이다. 여당이 개입됐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여당이 추진하는 각종 정책에 대해 번번이 딴죽을 걸었던 안 위원장이 이번에도 ‘사고를 쳤다’는 뉘앙스였다.
‘당심(黨心)’을 둘러싼 논란은 있지만 실제 여당 내에선 당이 주도하는 군 사법개혁 작업과 주적 개념 삭제 추진에 대한 군 일각의 반발에 불만의 목소리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당-정-청 개입 의혹이 정치권의 논란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與, 軍인사비리 정면비판▼
육군 장성 인사와 관련된 괴문서 사건을 수사 중인 국방부 검찰단은 24일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A중령을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했으며, 전날 소환한 같은 부서 B중령에 대해서도 이틀째 조사를 벌였다.
두 사람은 장성 진급 대상자의 인적사항과 근무실적, 인사평가 등과 관련된 자료를 총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군 검찰은 육본 압수수색의 근거가 됐던 음주운전 전력자의 준장 진급 건을 먼저 확인하고 있다. 괴문서가 지적한 다른 부적격 진급 사례도 사실로 확인될 경우 진급을 추천한 인사담당자들에게로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다음 주쯤 장성 진급심사 때 갑 을 병 및 최종 선발위원회에 참여했던 고위 장성들도 소환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열린우리당의 국방정책 담당인 제2정조위원회 안영근(安泳根)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국방부의 조사가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군 인사 전반에 대한 국정조사 추진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안 위원장은 “이번 괴문서 사건으로 뇌물, 식모살이(진급 대상자 부인이 상관 가정일을 돕는 것), 인맥 동원, 도덕성과 업무 능력 무시, ‘내 사람’ 감싸기, 위인설관(爲人設官) 등 각종 진급 비리가 모습을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육군 장성들은 괴문서 내용과 관련한 군 검찰의 전방위 수사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육군 A소장은 “이번 괴문서는 음해성 성격이 짙은데도 군 검찰이 압수수색까지 한 것은 월권행위”라며 “모든 장성이 비리와 부정을 통해 진급한 것처럼 비쳐 지휘권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육군 관계자는 “조영길(曺永吉) 전 국방부 장관은 ‘제대로 된 제보가 아닌 무기명 투서에 대해서는 내용에 대한 사실 확인보다 투서자를 먼저 엄단하겠다’고 했다”며 “윤광웅(尹光雄) 장관으로 바뀌면서 이 같은 기준이 흔들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군 검찰 관계자는 “이달 15일부터 음주운전자 진급 건을 조사해 이미 상당한 혐의를 확인했다”며 “육본의 수사 비협조가 심각해 압수수색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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