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한국과 미국의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2002년 10월 3, 4일 북한 외무성 회의실에서 열린 북-미 고위급회담은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비밀개발 문제로 싸늘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3일 밤 만찬행사도 어색하게 진행됐고, 4일에는 회담장에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외교 소식통들은 이런 정황 때문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그해 6월 천명한 대담한 제안의 구체적 내용은 거론될 기회조차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미국 고위급 인사는 최근 비공개 자리를 통해 “당시 북-미 국교수교를 위한 로드맵을 갖고 간 것은 맞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26일자 아사히신문에 보도된 미국의 “2002년의 대담한 제안은 아직 유효하다”는 발언은 올 6월 미국이 3차 6자회담에서 제시한 ‘미국 방안’을 수정하지 않으면서 미국의 입장을 북한에 전달하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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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6자회담은 미국이 올 6월 미국식 해법을 공개한 뒤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하는 상태. 북한은 “미국이 심사숙고한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인 이후 회담복귀를 거부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이 더 현실적이고 창의적인 안을 내야 한다”며 미국을 압박했고, 미국은 “북한이 버틴다고 미국이 해법을 번복할 수는 없다”며 반발했다.
최근 미국과 북한은 뉴욕채널을 재가동한 것으로 알려져 6자회담 재개에 청신호가 켜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시점이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도 26일 ‘12월 중순 북-미가 뉴욕에서 접촉을 가질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물밑 움직임이 빨라졌다고 낙관적인 전망을 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이 중론이다. 미국의 요구와 북한 사이엔 큰 입장 차가 존재한다. 미국측이 잇따라 “미국은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고 발언하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부시 대통령 재선 이후 대북 강경파의 득세와 맞물려 “미국의 성의표시는 6자회담 불용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사전작업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근본적인 해결은 북한이 핵개발의 꿈을 영구히 접을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그러나 북한은 플루토늄 프로그램만 시인할 뿐, 고농축우라늄 문제는 존재조차 부인하고 있다. 무엇을 포기할지 대상조차 규정하지 못한 것이 6자회담의 현주소이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올 초 “북한이 바깥세상을 읽는 방식이 과거처럼 북한식 논리로 일관하지 않고, 국제사회의 냉엄한 변화 흐름에 동참하겠다는 ‘코페르스쿠니적 전환’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워싱턴=김승련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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