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오세정]‘참여파 학자’ 숲을 봐야 한다

  • 입력 2004년 12월 9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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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에서는 교수나 학자들을 중용(重用)하고 있다. 내각과 청와대 비서실에는 교수 출신들이 많이 있고, 특히 국정의 로드맵을 마련한다는 대통령 직속 각종 국정과제위원회에는 당연직인 정부 인사들을 제외한 민간위원들의 거의 절반이 교수라고 한다.

‘성역 없는 개혁’을 기치로 내거는 정권이어서 ‘전례(前例)’를 중요시하는 공무원들의 업무태도가 마음에 맞지 않는다면 학자들을 쓰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교수와 같은 학자들은 나름대로 전문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과거의 관습에서 자유로운 집단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학자의 전문성과 국정운영▼

그러나 학자들의 전문성이 과연 국정운영에 적합한 것인가는 따져봐야 한다. 왜냐하면 최근의 학문은 극도로 분화되어 있어서, 학자들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는 몰라도 그 대상 분야가 매우 좁기 때문이다. 현대의 전문가란 특정 문제의 협소한 단면을 세밀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공부한 사람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사(博士)는 이제 그 글자 뜻과는 달리 널리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러기에 아무리 유능한 학자라도 자기 전공분야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잘못된 예측을 하거나 실수하기 일쑤이다. 한 예로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벤처업계에서도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창업해도 실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술은 알더라도 시장 예측을 잘못하거나, 시장을 알더라도 경영을 모르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설립한 투자회사가 막대한 손실을 입고 파산한 일도 있다. 이처럼 좁은 분야의 전문성은 기업이나 국가 경영에 도움이 못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학자들의 가치관은 기업가나 행정가들과 다를 수 있다. 기업가와 행정가들은 경영이나 정책의 최종 성과를 중시하는 반면, 학자들은 원칙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DJ정부 시절 신용카드가 남발되자 금융당국에서는 길거리에서의 회원모집을 막으려고 하였지만, 교수 출신 경제학자가 위원장이었던 규제개혁위원회에서 규제혁파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그 조치를 못하게 했던 일이 있었다.

이것이 그 후 수많은 사람을 신용불량의 질곡(桎梏)으로 몰아넣고 심지어 자살까지 하게 만들 정도로 카드사태를 악화시킨 한 원인이 됐다고 하는데, 이처럼 학자들은 정책의 최종 결과에 책임지기보다는 원칙을 지키는 데 더욱 관심이 있어 현실에 어긋나는 정책을 펴거나 실기(失機)하기 쉽다. 아마도 최근의 경제위기에 대한 정부의 대처가 늦어진 것도 학자 출신 실세들의 이러한 경향이 한 이유를 제공하지 않았나 싶다.

정부 요직은 학자들의 신념이나 이론을 시험하는 자리가 아니다. 정부 정책의 성공과 실패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만큼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궁극적으로 옳다고 확신하더라도 아직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으면 돌아가는 유연성도 필요하다. 하지만 ‘참여파 학자’들 중에는 이러한 신중함이 결여된 처신을 보이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또한 정부 정책은 대개 그 효과가 장기간에 걸쳐서 나타나고 잘못되더라도 책임소재를 분명히 밝히기 어려운 점을 이용해 무책임한 발언을 하는 경우도 보인다.

가장 안타까운 일은 숲 전체를 보는 안목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숲을 못 보고 나무의 세세한 면만 볼 줄 아는 전문가들은 아무리 많이 있어도 별 도움이 못 된다. 조각난 개별 지식들을 단순히 모아놓는다고 지혜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체를 꿰뚫어 볼 수 있어야▼

일찍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고 학제간(學際間) 연구소인 ‘산타페 연구소’를 창립하는 데 참여했던 머리 겔만 교수는 “여러 다양한 차원의 요소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현대사회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 부분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부분간의 상호작용을 탐지하고 전체를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이 더욱 필수적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지금 정부의 요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학자들은 과연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오세정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물리학 sjoh@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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