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하세봉]‘감성정치’ 벗어날 길 없나

하세봉

국민당 등 야권이 집권 민진당을 누르고 의석 과반수를 확보하는 결과로 끝난 11일의 대만 입법의원(국회의원) 선거를 현지에서 지켜봤다.

몇 년 전과 달리, 이번에 대만에선 ‘남북분열’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남부 도시 가오슝은 여당인 민진당 지지, 수도 타이베이를 포함한 북부는 야당인 국민당 지지로 정치적 지형이 확연하게 나뉘었다고 한다.

선거 당일 투표하지 않고 중국으로 여행 간다는 한 중년 부인은 정치에 별로 관심 없다고 하면서도 ‘남북분열’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논리가 있었다. 고학력자와 부자들이 적은 남쪽에 민진당 지지가 많다는 것이었다. 그는 외국의 대만 대표부가 ‘대만’이 아닌 ‘타이베이’란 이름을 쓰는 문제에 이르자 “중국의 압력 때문”이라며 흥분하기도 했다. 그의 반응을 보면서 ‘재외공관의 명칭을 대만으로 바로잡겠다’는 민진당의 슬로건이 대만인의 자존심을 득표로 연결시키는 데 상당히 효과를 발휘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민진당의 그런 전략이 ‘대만독립’ 문제를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비치면서 지식인 중에는 이를 식상해 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대만의 정체성에 관한 논의가 신선함을 잃고 정치적 상품이 됨으로써 나타난 반작용이리라.

선거 결과가 민진당 패배로 나타난 것은 민진당의 대만독립 관련 주장이 급진적이라고 판단한 유권자들이 안정을 선택했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국민당 측도 선거 당일 주요 일간지에 국민당의 창건자이자 중화민국의 국부인 쑨원(孫文)이 눈물을 흘리는 합성이미지를 담은 광고를 내보내는 등 감성에 호소하기는 오십 보 백 보인 듯했다.

하긴 한국에서도 ‘감성정치’가 대세처럼 돼 있지 않은가. 이성적 메시지조차 감성에 담아 보내야 통하는 게 요즘 정치의 불가피한 현실이라면 서글픈 일이다.

하세봉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