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귀국 후에는 재무장관과 이후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강경식(姜慶植) 씨의 보좌관을 지냈고, 1985년부터 이듬해까지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1986년 삼성코닝 상무로 입사해 부사장까지 오른 그는 1994년 중앙일보 대표이사 부사장을 맡아 언론계에 발을 들여놨다. 취임 후 주요 임원들을 모두 바꾸고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삼성그룹 간부들을 요직에 앉혔기 때문에 초기에는 ‘삼성 점령군이 중앙일보를 접수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엘리트코스를 거쳐 ‘황태자’ ‘귀족’ 등의 별명이 따라다녔다. 그러나 기자들과의 거리감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부 경찰출입 기자들과 웃통을 벗고 폭탄주를 마시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중앙일보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팀제를 실시하고 전문기자제를 도입했다. 판매 부문에서도 공격적 마케팅을 시도했으나 지나친 무가지 살포로 유통질서를 어지럽히고 과당경쟁의 부작용을 낳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때 정치에 뜻을 두었다는 말이 나돌았으며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적극 나섰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 증여세와 주식양도소득세 등 19억여 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돼 당시 ‘언론 탄압’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홍석현 주미대사 내정자 약력
△서울(55세) △경기고 △서울대 전자공학과 △미국 스탠퍼드대 경제학 박사 △재무부 장관 비서관 △대통령비서실장 보좌관 △삼성코닝 부사장 △중앙일보 사장 △국제언론인협회(IPI) 부위원장 △세계신문협회 회장 △한국신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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