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74년 北-스위스 수교

  • 입력 2004년 12월 19일 18시 31분


“북한이 현재로서는 무력 도발을 감행할 것 같지는 않다. 지금 우리는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계속 국력을 증강해야 한다. 그러면 1980년 무렵에 가서는 남북한의 국력은 크게 벌어질 것이다.”

1973년 1월 24일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재외공관장회의 참석차 귀국한 대사들을 위해 베푼 청와대 만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자신감은 같은 해 6월 23일 ‘북한을 하나의 정치적 실체로 인정한다’는 ‘평화통일 외교정책 특별선언’(6·23선언)으로 구체화됐다. 이 선언으로 북한과의 수교에 주저해왔던 중립적 서방 국가들이 한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게 됐다.

1973년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가 북한과 국교를 맺었고 1974년 12월 20일 스위스도 대북 수교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자 ‘북괴(北傀) 승인 러시의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주장이 정부 안팎에서 제기됐다. 1974년 한 해 동안 한국의 수교국은 5개 국에 불과한 반면, 북한은 3배에 가까운 14개 국에 달했기 때문. 1974년 말 당시 총수교국은 한국 94개 국, 북한 73개 국으로 여전히 남쪽의 우위였지만 북한의 추격 속도가 예사롭지 않았던 것이다.

1975년 8월 ‘북한의 비동맹회의 회원국 가입’이 확정되면서 국제사회에서의 남북한 표 대결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한국은 북한의 전방위 외교에 대항하기 위해 중동 문제에 있어 친(親)아랍 정책을 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1978년 주한 대사관을 철수시켰다.

박 대통령의 전망대로 1980년대 이후 남북 외교전은 싱거운 게임으로 변했다. 북한의 전방위 외교는 사회주의권의 몰락이란 국제 정세와 한국의 북방외교 앞에 꼬리를 내렸다.

그러나 2000년 6월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으로 서방 국가의 대북 수교 러시가 20여 년 만에 재연됐다. 2000년 7월 말 북한의 총수교국은 137개 국이었지만 4년여 만인 올 12월 현재 155개 국으로 18개 국이 증가한 것.

‘제2차 북한 승인 러시’에 대한 정부의 반응은 1차 때와 달랐다. 외교통상부는 2001년 10월 30일 “한국 정부는 우방국의 대북 관계 개선 결정을 존중하고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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