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국대사는 21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주한 미대사관 자료정보센터’에서 열린 외교부 출입기자단과의 송년 간담회 말미에 이런 농담을 던졌다. 민감한 외교 현안에 대한 기자들의 까다로운 질문이 1시간 가까이 이어지자 그 고충을 이렇게 표현한 것.
그러나 그 1시간은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그가 ‘미국 이익 대변자’만이 아니라 ‘한국의 특수한 상황과 역할을 워싱턴에 알리기 위해서’도 일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줬기 때문이다.
힐 대사는 미국의 북한인권법에 대한 논란과 관련해 “미국 내부에서는 ‘북한의 불안정한 상황이 기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국에는 (북한의 불안정성이) 비극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점을 본국에 설명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9월 주한 미국대사로서는 처음으로 광주 ‘국립 5·18묘지’를 방문했다. 10월에는 ‘카페USA’라는 온라인 방을 개설해 한국 누리꾼(네티즌)과 직접 대화를 나누고 있다. 힐 대사의 이런 태도는 서울 외교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힐 대사와 대화를 나누며 불현듯 리빈(李濱) 주한 중국대사가 떠올랐다.
리 대사는 남북한을 오가며 20년 넘게 살아 한국말이 유창하다. 그러나 리 대사와 주한 중국대사관이 한국민에게 주는 이미지는 ‘무례하고 오만하다’는 것이다.
최근 탈북자의 북송 반대 운동에 참여한 한나라당 황우여(黃祐呂) 의원에 대한 경고성 전화, 5월 대만 천수이볜(陳水扁) 총통 취임식에 참석하는 여야 의원들에 대한 불참 요구 등이 대표적이다. 반기문(潘基文) 외교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외교적 예의에 어긋난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비롯한 동북아 정세 안정을 위해 한중관계는 한미관계 못지않게 중요하다. 하지만 리 대사에 대한 이런 부정적 평가는 두 나라 관계 발전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리 대사와 한국 기자들이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부형권 정치부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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