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신동아’ 2005년 1월호에 황 씨 인터뷰가 실렸다. 친북용공 사상에 물들어 밀입북까지 했던 젊은이가 어떻게 인식 변화를 가졌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흥미롭게 읽었다. 그는 “1980년 5월 대다수 젊은이들이 갈구했던 자유민주주의를 전두환 씨가 말살했고 거기에 대한 대안으로 좌파적 접근을 했다”고 회고한다.
최근 뉴 라이트 운동을 이끄는 자유주의연대 간부의 술회처럼 광주의 비극에 가슴 아파하던 많은 젊은이들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이념을 찾다가 황 씨처럼 마르크시즘이나 김일성주의로 흘렀다. 황 씨는 인터뷰에서 “한때 시대상황을 잘못 판단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대가는 충분히 치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그의 동지들이 친북좌경으로 기울었던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1980년대 젊은이들의 좌경화는 전두환 체제가 상당 부분 원인 제공을 했습니다. 나도 한때 소련과 북한에 호감을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동유럽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사회주의 안하려면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며 진짜 전향서도 안 쓰고 떠났습니다. ‘인민노련’ 사건으로 19명이 감옥에 갔는데 그중에 4명이 지금 판사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황 씨가 총책인 중부지역당에 가입해 수감생활을 했다가 이번에 노동당 가입 논란에 휩싸인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은 한 집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80년대 민주화 투쟁의 정신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옳다. 그러나 그것을 이루기 위해 편향되고 잘못된 길을 갔다.”
80년대 친북좌파들 중에는 여러 갈래가 있다. 황인오 이철우 씨처럼 대가를 치른 사람들도 있고, 신지호 씨처럼 커밍아웃을 하고 ‘뉴 라이트’를 선언한 사람도 있다.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을 외치다가 전향서 한 장 안 쓰고 국회의원이 되거나 중요한 위치에서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부 단체에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시대착오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80년대 전두환 정권이 ‘친북좌파’를 찍어내는 공장이었다면 집권 쪽 강성 흐름을 주도하는 386 탈레반은 ‘수구꼴통’을 확산시키는 온상이라는 말이 나온다. 조용하게 살던 보수들이 머리띠를 매고 서울시청 앞 광장에 나와 ‘정권 타도’를 외치는 것은 헌정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친북좌파’와 ‘수구꼴통’은 적대적 의존관계다.
요즘은 좌우 양쪽 극단에 실망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독재에 협력한 과거는 반성하지 않고 ‘민주화 세력’까지 싸잡아 좌파로 모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기 어렵다. 반대로 21세기의 세계사적 흐름에 눈감고 80년대 좌파운동권의 구호를 아직도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사는 탈레반들의 행태도 걱정스럽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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