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가족단위 경작제’ 도입…‘이윤욕구’ 극대화

  • 입력 2005년 1월 3일 17시 52분


북한이 과감한 농업개혁 조치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일련의 조치는 심도가 깊고 속도가 빠르다. 중국이 1978년 본격적인 개혁 개방을 추진하면서 단행한 농업개혁의 첫 단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데에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북한 당국은 개혁이 사회주의 기본원칙인 집단주의를 훼손할까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농업개혁을 통한 생산력 향상으로 사회주의 경제 개혁에 성공한 중국과 베트남의 경험을 뒤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왜 2, 3개 가구로 분조 구성하나=최근 북한이 내놓았거나 내놓을 예정인 농업개혁 조치의 이면에는 두 가지의 원칙이 있다.

첫째는 농업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는 것. 두 번째는 모든 경제 활동은 개인이 아닌 집단을 위한 것이라는 사회주의의 원칙이다.

북한대학원대 양문수(梁文秀) 교수는 “두 원칙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2, 3가구 단위로 영농의 단위(분조)를 세분화하는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2, 3가구가 분조를 이루면 분조 구성원은 4∼12명으로 북한이 1996년 도입한 신(新)분조관리제하의 8∼17명보다 크게 줄어든다.

생산 및 분배의 단위가 줄어들수록 개인의 이기심이 발동돼 생산이 늘어난다. 그러나 명목상 2, 3개 가구를 생산 단위로 묶어 ‘집단을 위한 생산’이라는 두 번째 원칙을 지키겠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노동 능력과 영농 기자재 보유 상태가 고르지 않은 2, 3가구를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계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어떻게 되나=북한 사정에 밝은 중국 소식통은 “생산수단을 골고루 갖추는 것을 전제로 마음이 잘 맞는 2, 3가구가 한 분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론상 아버지 가구, 결혼한 아들과 딸 가구 등 3가구가 한 분조원이 될 수도 있다. 이 경우 명목상은 집단적인 생산을 위한 분조이지만 사실상은 개인적인 가족영농제가 가능하다.

또 한 분조에 속한 2, 3가구가 공동 경작을 하지 않고 땅을 2∼3등분 한 뒤 개인 경작을 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권태진(權泰進)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중국의 농업개혁 과정을 따른다면 2, 3가구 분조 체제가 조만간 1가구 단위의 개인 영농체제로 넘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먹는 문제 해결에 전력=북한은 올해 농업개혁 및 농업 생산량 증가에 ‘다걸기(올인)’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2001년 10월 ‘강성대국 건설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 경제관리를 개선할 때 대하여’라는 문건에서 “먹는 문제가 해결되면 경제개혁 조치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2002년 7월 1일 생산단위의 분권화와 시장 메커니즘 도입을 골자로 하는 ‘7·1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식량난은 완전하게 해소되지 않았다. 지난해 북한의 곡물생산량은 424만 t으로 최근 10년 동안 최대치였지만 여전히 수요보다는 100만 t가량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고려대 북한학과 남성욱(南成旭) 교수는 “북한은 젖소나 염소 기르기에 이미 가구 단위의 경쟁 생산체제를 도입해 생산량을 늘렸다”며 “가구의 이기심을 이용해 농업 생산도 늘려 보자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북한의 농업 개혁 조치
조 치시기주요내용
분조 단위의 경쟁 체제 도입 및 비용 현실화2002년 7월 이후―10∼20명이 분조를 이루고 분조의 성과에 따라 협동농장이 벌어들인 돈 분배
―토지이용료, 전기세 부과 등 비용 현실화
개인토지(뙈기밭) 공식 허용2002년 7월 이후―개인들이 개간한 토지의 사용권을 인정
―평당 11∼14원의 사용료 부과
공장 기업소와 협동농장과의 연계 강화2003년 ―공장 기업소들에 협동농장 땅을 일정 면적 배정
―생산물의 일부를 토지세 및 비료값의 명목으로 농장에 바치게 함
개인경작제도 실시2003년 ―분조가 공동 관리하는 땅 이외에 농장원 개인별로 300평 내외의 협동농장 땅을 나눠 주고 경작케 함
―개인 영농에 필요한 노동 시간 허용
북한 김용술 무역상 농업 관련 발언 2003년 12월 11일“포전담당제를 시범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협동농장에) 분조를 더 작은 단위로 나눌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고 그런 속에서 더 적은 인원으로 포전을 담당하는 포전담당제가 나왔다.”
2005년 공동사설2005년 1월 1일―올해 사회주의경제건설의 주공전선은 농업전선
―농사를 잘 짓는 데 모든 역량을 총집중 총동원해야
신(新) 분조관리제 개혁2005년(예정)―2, 3가구로 분조를 구성해 경작하게 함
―친지로 분조 구성하면 사실상의 가족영농 가능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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