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건설 특별법에 대해 이전 위헌결정을 내렸을 때 “그런 이론은 처음 듣는다”며 불만을 표시했던 노 대통령은 4일 입법 행정 사법부의 차관급 인사를 초청한 신년인사회에서는 “내용이 잘 되고 못 되고를 떠나 헌재의 판단이 큰 혼란 없이 수용된다는 것 자체만으로 한국 민주주의가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의 반응과 달리 크게 누그러진 듯한 모습이었다.
노 대통령 본인은 최근 자신의 변화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내가 변했든 변하지 않았든 잘 해보자”라고 말했다. 스스로 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변했다는 얘기를 듣는 게 싫지는 않다는 얘기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사석에선 “내가 왜 변했다고 그러느냐”며 가끔 불만을 토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연히 주변에서 입맛에 맞게 ‘해몽’할 뿐이라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대체로 “노 대통령이 변했다기보다 상황이 많이 바뀌었을 뿐”이라는 데 손을 드는 분위기다.
임기 초반에는 국회에서 여당이 소수당인 탓에 국정 운영이 워낙 팍팍했고 탄핵소추까지 당했지만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하면서 정치 환경이 달라졌고 그에 따라 여유를 찾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요즘 노 대통령의 발언에서는 오랜 세월 비주류로 지내온 탓에 지니게 된 특유의 공격적인 면모가 많이 사라졌다.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나보고 무조건 포용하라는 것은 원칙을 포기하라는 것”이라고 말했으나 6개월 뒤인 4일에는 “상대를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관용의 문화가 좀 더 발전했으면 좋겠다”로 바뀌었다.
이러한 노 대통령의 변화가 국정철학이나 주요 정책의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오히려 근본적인 국정운영의 철학이나 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예를 들어 노 대통령이 해외순방 이후 기업을 극찬했지만 이것이 출자총액제한제도나 집단소송제 도입 같은 기존의 대기업 정책 후퇴로까진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다. 즉 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전보다는 더 애정을 보이겠지만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기본 방향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경기 부양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노 대통령은 해외순방 직후인 지난해 12월 초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회의에서 “경기가 나쁘다는 이유로 집단이기주의 정책을 반영하려는 세력이 있다”면서 단기적인 경기 부양책은 쓰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외교 분야 역시 북핵문제나 대미관계 등 핵심 부분에 있어서는 “얼굴을 붉힐 때에는 붉혀야 한다”는 이른바 ‘자주외교’ 노선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
다만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나 역할에 대해서는 훨씬 적극적인 자세를 갖는 쪽으로 바뀌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노 대통령이 지난해 해외순방 때 동남아와 남미, 유럽 등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를 두루 방문했다”며 “그랬기에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는 큰 공부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아시아 지진해일 피해에 사상 유례가 없는 5000만 달러의 지원금을 내놓게 된 것도 노 대통령의 국제 감각에 변화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결국 노 대통령의 최근 행보는 ‘원칙’의 변화가 아니라 ‘스타일’과 ‘상황’의 변화라는 해석이 설득력 있는 분석일 듯하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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