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START]<7·끝>시민 챙기는 시민단체로

  • 입력 2005년 1월 7일 17시 35분


2004년 한국의 시민사회는 전에 없는 갈등의 양상을 보였다.

진보적 시민단체들의 활발한 활동이 계속된 가운데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던 보수인사들이 이에 맞서 단체를 결성하고 집회와 시위를 전개하면서 시민단체는 어느새 사회갈등의 한복판에 서게 됐다.

기존의 시민운동은 권력에 대한 감시를 통해 민주화에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절차적 민주주의가 거의 완성된 지금, 시민단체들은 새로운 시대적 요청에 직면해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 시민운동은 비판과 감시를 넘어 시민들의 삶과 밀착된 시민운동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유석춘(柳錫春·사회학) 연세대 교수는 “지금의 시민단체들은 지나치게 정치지향적이며 문어발식으로 모든 문제에 다 개입하고 있다”며 “정치적인 문제에 너무 몰두할 게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의 복지 해결, 지역의 현안, 작은 단위의 공동체가 뭘 해야 하는지 등 실제 생활영역에서 활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높아진 시민의식=시민들의 의식은 이미 기존의 시민운동을 뛰어넘고 있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서울 광화문에서의 촛불행렬에서 시민단체들은 주최자 역할만 수행했을 뿐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고, 17대 총선에서 벌어진 시민단체들의 낙선·당선 운동은 예전처럼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김의영(金義榮·정치학·정치학회 NGO분과장) 경희대 교수는 “이제 시민단체들은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한다”며 “역할 분담을 통해 정치권이 다루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 이슈와 대안을 내는 등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은 정치적인 이슈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박진섭(朴進燮) 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은 “정치는 시민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이며 정치가 제 기능을 못했기 때문에 시민운동이 정치적인 방향으로 가는 것”이라며 “시민운동에서 정치영역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차병직(車炳直·참여연대 집행위원장) 변호사는 “시민운동이 전문화와 풀뿌리화를 향해 나가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며 “하지만 여전히 시민단체에는 정치권력 사회권력 등 여러 권력에 대한 감시의 역할도 중요하기 때문에 기존의 비판과 감시 역할도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임현진(林玄鎭·사회학과) 서울대 교수는 “시대적 필연성이 있었지만 우리의 시민단체들은 ‘지나치게 정치적’인 정도가 아니라 준정치적인 집단이 됐다”라며 “상황이 바뀐 만큼 시민단체들은 정치적 힘이 아닌 사회적 힘을 발휘하는 적절한 모습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과 함께하는 시민운동으로=감시와 비판을 넘어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시민운동은 이미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올해 정치적인 이슈가 아닌 서민들의 삶에 직접 도움이 되는 시민운동에 주력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양극화된 사회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나눔의 운동을 펼칠 계획이다.

권영준(權泳俊) 정책위원장은 “정치적 이슈도 많지만 사회와 서민들이 정말 목말라 하는 부분은 실사구시(實事求是)적인 경제”라며 “시민단체들도 ‘편 가르기 세력’이 아닌 통합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연대’ 등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구 단위로 움직이는 지역운동은 이미 곳곳에서 자리를 잡았고 시민들의 풀뿌리 운동을 강조하는 ‘서울시민포럼’도 지난해 말 발족했다. 같은 성격의 ‘서울시민연대’도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조대엽(趙大燁·사회학) 고려대 교수는 “시민단체들이 ‘저항의 전략’에서 ‘소통의 전략’으로 나아가야 하며 이를 위해 풀뿌리화, 전문화가 중요하다”며 “앞으로는 ‘사회 운동’보다는 ‘사회 서비스’ 측면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주민 삶에 뛰어들어 실질적 도움 줘야”▼

“도시 공동체 함께 만들어갑니다”
지난해 6월 ‘주민참여를 통한 올바른 지방자치 실현’을 기치로 주민 200여 명이 참여해 만든 마포연대. 이들은 정기적으로 공동 워크숍을 열어 주민들의 애로사항 등을 찾아내 해결하는 자리를 갖는다. 사진 제공 마포연대

“한국의 시민운동은 이제 정치적 사안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삶에 뛰어들어 그들의 생활에 실질적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마포연대’는 국가의 정치적 현안에 큰 목소리를 내는 유명한 다른 시민단체와는 다르다. 이들은 지역 내 생활 현장에서 주민들의 애로사항을 직접 찾아내고 이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단체다.

마포연대는 2001년 초 서울시가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 정상에 물탱크를 설치할 계획을 세우자 이에 반대하며 결성된 ‘성미산을 지키는 주민 연대’가 모태. 지난해 6월 ‘주민참여를 통한 올바른 지방자치 실현’의 기치를 내걸고 주민 200여 명이 참여해 만들었다.

마포연대는 지난해 11월 마포구 아현동 일대의 저소득층 가정을 방문해 이들의 건강상태를 조사한 뒤 지역 의료기관과 협조해 ‘건강 한마당’이라는 행사를 통해 무료 진료를 받게 했다. 또 저소득 가정의 가장 큰 문제가 영양실조라는 것을 파악하고 반찬가게와 함께 지역 내 12가구에 매주 두 차례씩 반찬을 제공하고 있다.

마포연대는 문화행사 개최도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마포야 놀자’라는 행사를 통해 어린이 장기대회, 장애인 체험 등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해 지역 주민들이 교류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마포연대 김종호 대표(38)는 “시민운동 성공의 관건은 지역 주민의 삶에 얼마나 실질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느냐는 것”이라며 “주민들이 지역 문제를 고민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美 120여만개 조직 활동 ‘NGO의 천국’▼

비정부기구(NGO)의 활동이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미국에서는 실용주의 노선을 걷는 시민단체가 많다.

미국은 120만 개 정도의 시민단체가 활약하고 있어 ‘NGO의 천국’이라고 불릴 정도.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오관영(吳寬英) 예산감시국장은 “미국은 당파적 정치활동을 하는 단체는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게 법적으로 규정돼 있다”며 “정부 지원을 받는 단체들은 주로 복지나 발전 등 실용주의적인 주제로 활동한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대표적 NGO인 ‘코업 아메리카(Co-op America)’는 경제적 시스템을 통한 사회발전을 목표로 개인을 교육하고, 기업을 후원하는 데 활동을 집중하고 있다. 이 단체는 지역사회를 생각하고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기업들을 발굴하고 알리는 일을 하는 한편 소비자들에게는 올바른 소비방법을 교육한다.

캐나다의 ‘데모크라시 워치(DW)’도 비영리성과 독립성, 초당파성을 유지하면서 시민들과 함께 정부와 기업에 ‘실용적인 개혁’을 제안한다. 은행 및 기업의 책임성, 정부의 윤리 등과 같은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해 12개의 주요 연방 법률에 대해 20개 이상의 민주적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DW는 정부나 대기업이 아니라 개인 후원자들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다.

유럽의 경우는 시민운동의 발상지답게 NGO 활동이 ‘국제 연대성’을 지닌다. 대표적인 단체는 국제사면위원회(AI). 이 단체는 한국을 비롯해 50여 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으며 정기 기부자만 110만 명에 이른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도움말 준 전문가(가나다순)▼

▽시민운동 분야

권영준(경희대 국제경영학부 교수·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위원장)

김의영(경희대 정치학과 교수·정치학회 NGO분과장)

김정훈(서울시민포럼 사무국장)

박진섭(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

유석춘(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이학영(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임현진(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정현백(성균관대 사학과 교수·한국여성단체연합회 공동대표)

조대엽(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차병직(변호사·참여연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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