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 보도]실형 확정돼도 사면-가석방으로 풀려나

  • 입력 2005년 1월 13일 18시 09분


“실형을 선고하면 뭣하나, 다 빠져나가는데….”

‘비리 거물’에 대한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이 문제될 때마다 일부 판사들은 이렇게 항변한다.

본보의 사정 결과 추적 및 분석 결과는 이 같은 항변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실형이 확정된 ‘범털’(배경이 든든한 수형자를 일컫는 은어) 가운데 절반 이상이 대통령과 정부의 은전(恩典)을 받고 죗값을 다 치르기 전에 교도소 문을 나서기 때문이다.

사정 결과 분석에 따르면 비리 거물 판결 확정자 337명 가운데 법원이 최종적으로 실형을 선고한 사람은 70명. 이들 중 만기 복역하거나 복역 중인 사람은 28명에 그쳤다.

나머지 실형 확정자 42명이 복역 도중 교도소 문을 빠져나간 사유는 △사면(잔형 면제 포함)이 22명 △가석방 8명 △형 집행정지 8명 △보석 3명 △구속기간 만료 1명이었다. 보석과 구속기간 만료를 제외한 나머지는 사법부와는 상관없이 정부(대통령과 법무부)가 단행하는 것.

결국 전체 실형 확정자 70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38명(54.3%)이 ‘정권의 은전’을 받아 석방된 것이다.

이들이 사면이나 가석방 등 사법 이외의 절차로 풀려나지 않았다면 실형을 만기 복역했거나 복역 중인 비리 거물의 비율(8.3%·전체 확정판결자 337명 가운데 28명)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비리 거물의 관대한 처벌이 문제될 때마다 일부 판사는 “어차피 실형을 선고해봤자 사면과 가석방, 형 집행정지 등으로 상당수가 풀려나는 상황이기 때문에 엄한 처벌을 하는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정권이 필요에 따라 사정하고, 필요에 따라 풀어주면서 스스로 사정의 의미를 훼손한다”는 지적이 많이 나온다.

한편 정권의 은전으로 석방된 38명 가운데 국회의원과 차관급 이상 고위 공무원, 청와대 관련 인사가 24명으로 3분의 2 가까이 됐다. 자치단체장, 공기업 간부 등은 얼마 안됐다. 결국 정권의 은전도 거물 중의 거물에게 집중된다는 사실을 나타내주는 것.

반면 사정 대상에 올라 실형 확정판결을 받고 사면이나 가석방도 없이 선고된 형량을 다 복역하는 거물들은 ‘거물(巨物)’이 아니라 ‘한물갔다’는 뜻의 ‘거물(去物)’이라는 자조(自嘲)가 나올 법도 하다.

이들 외에 사면을 많이 받은 직업군은 전현직 군 장교들로 이들은 모두 1979년과 1980년의 12·12쿠데타와 5·18민주화운동으로 기소돼 실형이 확정된 ‘신군부’ 출신이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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