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세력에 사정(司正)이라는 칼은 쉽게 외면하기 힘든 유혹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집권세력은 정권 초기나 위기 국면에서 대대적인 사정을 통해 정치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고 주도세력 교체를 시도했으며 이를 통해 집권기반을 굳혀 왔다.
1993년 이후 우리 사회의 지배세력은 지역적 기반을 기준으로 3차례 변화가 있었다. 김영삼(金泳三) 정권과 김대중(金大中) 정권은 지역적 특색이 강했으며 현재의 노무현(盧武鉉) 정권 역시 어느 정도 지역성을 갖고 있다.
본보 취재팀의 사정 결과 분석은 정권과 사정 대상자들의 출신지역(각종 인물정보의 출생지 기준)간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부산경남(PK)을 기반으로 한 YS 정권에서는 그 직전의 지배세력이었던 대구경북(TK) 출신 거물급 인사들이 집중적으로 사정 대상이 됐다.
전체 분석 대상 464명 가운데 YS 정권(1993∼1997년) 때 기소된 인사(정치인, 고위 공무원, 지방자치단체장, 공기업 간부, 법조인 등)는 모두 131명. 이들을 출신지역별로 분류해 보면 TK 출신이 36명(27.5%)으로 가장 많았다. 반면 PK 출신은 17명(13.0%), 호남 출신은 18명(13.7%)이었다.
이때 검찰 주변에서는 TK 인사들이 대거 구속되는 현실을 빗대 “추락하는 TK는 날개도 없다”는 말이 떠돌았다. 이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니었음이 입증된 것이다.
호남을 기반으로 한 DJ 정권이 출범한 이후에는 PK 출신이 그 이전에 자신들에게 정권을 내준 TK 출신의 전철을 되풀이했다.
DJ 정권(1998∼2002년)에서 기소된 거물급은 175명. 이 기간에 TK 출신은 PK 정권 때에 비해 인원(33명)과 비율(18.9%) 모두 줄었다. 반면 PK 출신은 인원(31명)과 비율(17.7%) 모두 크게 늘었다.
특이한 것은 DJ 정권에서 호남 출신의 거물급 인사 35명(20.0%)이 사정 대상이 된 것. 이는 DJ 정권 말기에 있었던 각종 ‘게이트’ 사건으로 권력자들이 다수 수사를 받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
2003년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대선자금 수사 등으로 거물급 인사들이 사정 대상에 많이 올랐다.
2004년 말까지 2년간 파악된 사정 대상 거물급 인사는 158명. 이들 중 호남 출신이 46명(29.1%)으로 가장 많았다. TK 출신(24명·15.2%)은 계속 감소 추세였고 PK 출신(22명·13.9%)도 그 이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
이 같은 결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전 정권의 파워엘리트들이 집중적으로 사정의 대상이 되고 그 공백을 새 정권의 파워엘리트들이 차지하며, 다시 정권이 바뀌면 똑같은 현상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사정의 의도에 대해 의심이 제기되기도 한다. 사정 작업이 당초의 순수성을 잃고 이전의 주도세력을 겨냥한 ‘표적 사정’으로 변질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정 대상자들이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사정의 동기야 어찌 됐든 사정 대상이 된 것은 자신들이 부패하거나 법을 어겼기 때문이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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