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영균]재벌 뺨치는 ‘公閥’

  • 입력 2005년 1월 14일 18시 16분


과감한 개혁으로 영국병을 고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썼다.

“민간 기업은 정부에 의해 규제되고, 공기업은 누구의 규제도 받지 않는다.”

기존의 민간 기업은 해외로 떠나가 버리고, 세계 어느 기업도 투자하지 않으려고 했던 영국이었다. 공기업은 노조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영국은 노조의 동의 없이는 제대로 통치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이런 영국을 바꾸려고 했던 대처 전 총리의 고민을 읽을 수 있는 말이다.

요즘 국내 사정을 보면 대처 전 총리의 이 말이 딱 들어맞는다.

우선 공공 부문을 보자. 얼마 전 경기 용인시에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보다도 큰 시청사가 들어선다고 해서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건축비로만 1620억 원을 들이고 7만9000여 평의 터에 연면적 2만4000여 평짜리 건물을 짓고 있다고 한다. 이런 일로 감사원 감사를 받는 지방자치단체가 26곳이나 된다고 하니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과연 이런 투자가 가능할까. 과거 ‘재벌의 과잉 투자’를 탓했지만 공공 부문에서 한술 더 뜨는 격이다.

얼마 전에 완공됐다는 서울 시내 한 구청의 청사를 가 보았더니 과연 이렇게 크고 웅장하게 지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게 다 세금인데’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공기업의 문어발도 과거 재벌의 그것에 못지않다.

엊그제 감사원이 발표한 지방 공기업의 실태가 그에 대한 답을 말해 준다. 1995년 민선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 설립된 38개 공기업 가운데 29개가 만성 적자이거나 거덜이 난 상태라고 한다. 이런 지방 공기업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세금이 들어갔을까.

더 안타까운 일은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고도 누구 하나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간 재벌의 과잉 투자와 부실 경영은 스스로 책임이라도 져야 하지만 ‘공벌(公閥·공기업 재벌)’은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공벌의 과잉 투자와 문어발식 부실 경영이 재벌보다 더 무서운 법이다.

그렇다면 민간 기업은 어떨까. 대우종합기계를 인수하기로 한 두산중공업의 사례를 보자. ‘얼마 이상은 출자하지 말라’는 출자총액제한제도에 걸려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거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제도 때문에 투자를 못하는 일은 없다고 했던 공정위는 ‘투자와 출자는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기업 쪽에서 보면 출자는 투자의 한 방식일 뿐이다.

기업 인수합병(M&A)은 사람으로 치면 결혼과 비슷한 것이다. 왜 정부가 나서서 결혼 조건을 직접 심사하고 규제해야 하는가. 시장 독과점의 우려가 있다든지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 최소한으로 줄여야 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뉴딜형’ 종합투자계획을 추진한다고 한다. 엊그제 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풍부한 민간 자금을 공공 투자로 끌어들이겠다고 했다. 공공 투자의 내용은 아직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시청사 도서관 복지시설 등이 거론된 적이 있다. 이른바 종합투자계획이 세금 잡아먹는 ‘공벌’을 키우는 실책이 될까 겁이 난다.

박영균 경제부장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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