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협정문서 공개]韓日협정 대화록 3대쟁점

  • 입력 2005년 1월 17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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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교섭을 시작한 한일회담은 14년간의 줄다리기 끝에 양측의 ‘정치적인 타결’로 합의에 이르렀다. 하지만 두 나라는 협상 과정에서 한일협정의 성격 규정이라는 ‘대전제’부터 첨예한 대립을 보였다. 이번에 공개된 ‘청구권 협정’ 문서 5권 중 양측의 대화록을 △협정의 성격 논쟁 △개인청구권 소멸 문제 △자금의 용처에 대한 논쟁으로 나눠서 발췌 요약한다.》

▼개인청구권 소멸▼

▽이규성 수석대표(외무부 주일공사)=일본 측은 청구권 소멸에 관한 원칙 문제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골치 아픈 점이 많다는 생각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 측으로서는 ‘이동원(李東元·당시 외무부장관)-시나 에쓰사부로(椎名悅三郞·당시 일본 외상) 합의’ 사항 제5항에 규정돼 있는 대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모든 청구권이 해제되었다고 해석한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앞으로 양국이 각각 국내적으로 소화하며 처리하는 문제만이 남아 있다.

▽사토 쇼지 대표(외무성 조약국 참사관)=한국 측은 소위 청구권 소멸에 관한 문제가 이-시나 합의사항에 의하여 해결돼 버렸다고 하나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소멸됐는가 하는 것을 확실히 해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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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케 히로시 대표=청구권 소멸 문제에 관해 이 수석께서는 쉬운 것같이 말씀하셨지만 사실 이 문제는 파고들수록 점점 더 어렵다. 개인 청구권이 없어진다는 것이므로 중대하다. 재일 한국인 청구권의 처리 문제, 소멸의 대상과 범위, 제2차 세계대전 종결 등도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시나 합의에 의하면 2차 대전 후의 통상적인 채권 채무 관계는 소멸되지 않는다고 돼 있는데 소멸되지 않는 청구권의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이규성=지금까지의 청구권 문제 해결 경위를 보면 각종의 청구권이 덩어리로 해결된 것으로 돼 있다. 그 다음 그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결국 각각 국내 문제로 취급돼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14년간 긴 교섭의 종지부를 찍는 것이므로 빨리 하자.

▼협정성격 논란▼

▽니시야마 아키라 대표(외무성 경제협력국장)=한국에 대한 우리 측의 제공은 어디까지나 배상과 같이 의무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경제협력이라는 기본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야나기야 겐쓰게 보좌역=일본 측은 전부터 ‘한국의 경제개발을 위하여’ 제공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김영준 대표(경제기획원 차관보)=이-시나 합의사항을 보면 청구권 및 경제협력이라고 돼 있어서 청구권적인 성격이 엄연히 표현되어 있다.

▽니시야마=우리는 한국에 대한 것이 배상과는 다르고 경제협력이라는 면이 강하다는 생각이다.

▽이규성=우리도 일본의 한국에 대한 제공이 배상이 아니라 특수한 것이라는 생각이나, 그 표현은 청구권 및 경제협력으로 돼야 할 것이다.

▽니시야마=이 수석이 말하다시피 배상이 아니기 때문에 경제협력이라는 것이다. 우리 측으로서는 배상과 같지 않지만 일종의 정치적인 협력이라는 의미에서 제공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일본의 일방적인 의무에 입각해서 제공하는 것으로 되면 곤란하다. 한국 측에서 이 돈은 우리가 받아야 하는 것이니 마음대로 해야겠다고 하면 곤란하다.

▽김영준=전혀 의무가 없다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물론 청구권이라는 일방적인 주장도 과거 상호 의견대립 입장에서 볼 때 문제가 되지만, 최소한 청구권 해결에다가 경제협력이라는 생각이 가미돼서 결국 청구권 및 경제협력으로 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 국내의 일반 국민감정이 청구권을 받아들이는 생각으로 일관돼 있으므로, 만일 청구권이라는 표현이 달라진다면 이것은 중대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야나기야=김-오히라 합의에 이르게 된 경위를 보면 한국 측에서는 청구권과 경제협력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었으나, 일본 측의 생각은 경제협력이 주(主)라는 것이다.

▽정순근 전문위원(외무부 경제협력과장)=이 문제가 청구권에서 시작된 것이지 한국의 사정이 어려워 도와달라는 데서 시작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

▼자금사용처 논쟁▼

▽니시야마=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의 사용 계획에 대해 설명해 주기 바란다.

▽김영준=우리는 유·무상의 구별 없이 일괄해 계획하고 있다. 앞으로 청구권이 해결되면 그때 가서 이 재원을 추가해 경제계획에 반영시킬 예정이다. 우선 청구권 사용상의 기본 방침을 말하자면 3억 달러는 수익성이 적은 사업 등과 사회간접자본(SOC) 및 고용효과가 큰 사업 등에 중점적으로 사용할 것이다. 또한 내자(內資) 조달을 위하여 상당한 양의 원자재를 희망하고 있다. 유상 2억 달러는 기간공장의 설립과 전원(電源) 개발, 철도, 해운 등에 집중적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니시야마=무상 3억 달러와 유상 2억 달러가 일체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것의 혼용을 생각하고 있는가. 예를 들어 비료 공장을 짓는 데 소요자금의 일부를 무상분으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유상분으로 충당한다든가 하는 일은 없겠는가.

▽김영준=가령 철도부문을 예로 들면 그 부문 내에서 어떤 사업은 무상분으로 하고 다른 사업은 유상분으로 충당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니시야마=청구권에 의거한 프로젝트의 현지 공사비에 대해 한국 정부의 일반 예산에서는 전혀 출자하지 않는가.

▽김영준=무상 유상을 합한 5억 달러의 사업에 대하여 일반회계에서는 일절 출자하지 않는다. 청구권 사용에 관한 국민들의 관심이 깊기 때문에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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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韓日협정 분수령된 김종필-오히라 합의▼

金-오히라 메모
1962년 11월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 친필로 작성한 ‘김-오히라 메모’. 1992년 6월 22일 본보가 단독 입수해 보도한 이 메모로 대일 청구권 포기를 비롯한 굴욕 외교의 진상이 드러났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한국과 일본은 청구권 및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체결의 고비를 정치적 타결로 극복했다. 이번에 공개된 한일협정 협상 문서에는 1962년 11월의 ‘김종필(金鍾泌·당시 중앙정보부장)-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당시 일본 외상) 메모’와 1965년 3월의 ‘이동원-시나 에쓰사부로 합의’ 내용이 소개돼 있다.

▽김-오히라 메모=1962년 김 부장과 오히라 외상은 두 차례 회동했다. 11월 12일 열린 2차 회담에서 두 사람은 청구권 금액과 지불 종목 및 조건 등에 관해 메모 형식으로 합의했다. 이것이 유명한 ‘김-오히라 메모’.

이 합의에 따르면 일본은 무상 3억 달러를 10년간 제공하고 유상 2억 달러 차관을 10년 제공하며 한국은 연리 3.5%에 7년 거치, 20년 상환토록 했다. ▽이-시나 합의=청구권 문제 해결에 관한 교섭 결과 확인 및 최종문안 확정을 위해 한일 외무장관은 1965년 3월 24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만났다. 3월 28일까지 열린 회담에서 두 사람은 ‘한일 간 청구권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사항’에 가닥을 잡고 초안을 작성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김-오히라 메모’에서 정했던 1억 달러의 민간 상업차관의 총액을 3억 달러로 늘린 것. 양측은 ‘상업 베이스에 의거한 통상의 민간 신용제공 총액은 3억 달러 이상에 달한다’고 합의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이번 한일협정 문서 정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인 조영중(趙泳重·서울대 영문학과 3학년)씨와 박은영(朴垠映·경희대 정치외교학과 3학년)씨가 참여했습니다.

▶제6차 한일회담 청구권 관계자료 다운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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