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선 때 염동연(廉東淵) 열린우리당 의원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 후보 조직특보를 맡았던 이강철(李康哲) 씨가 대통령시민사회수석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백수’라는 말은 한마디로 2년 동안 ‘있는 듯 없는 듯’ 지냈다는 뜻. ‘대통령 핵심 측근’이라는 딱지가 따라다녔지만 노 대통령이 그에게 특별한 자리를 주지 않았다. 그 대신 당에서 17대 총선을 앞두고 영입추진단장을 맡아 한나라당의 텃밭인 대구경북(TK) 지역의 선거운동을 사실상 총괄했다. 그러나 총선 때는 대구(동갑)에서 결국 낙선했다.
한때 이 씨는 대선 때 기여한 당내 인사들의 ‘자리를 챙겨주는’ 역할을 하다가 정찬용(鄭燦龍) 전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과 불협화음을 빚기도 했다. 노 대통령이 2003년 3월 염 의원과 함께 그를 청와대로 불러 만찬을 하면서 “정치를 하려면 확실히 하고, 아니면 삼계탕 장사를 하라”고 권유한 일화도 있다.
1973년 유신반대 운동으로 투옥됐고, 74년엔 민청학련사건으로 구속돼 7년을 감옥에서 살았다. 감옥 동지인 열린우리당 유인태(柳寅泰) 의원과는 ‘바둑 친구’ 사이. 노 대통령과 ‘동지적 관계’로 불릴 만큼 비중 있는 인물인 탓에 사실상의 정무수석 역할을 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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