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중국과 일본의 관계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일본은 중국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대만 독립파’의 수령이라 할 리덩후이(李登輝) 전 대만 총통을 초청했으며, 또 4월 달라이 라마의 입국을 허용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도 댜오위(釣魚) 섬 또는 센카쿠 열도의 풍경을 담은 엽서를 발행해 양국 간 영토분쟁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와 중국 원자력 잠수함의 일본 영해 침범 등으로 악화일로의 길을 가는 중일 관계는 그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21일 가동을 시작한 ‘신헌법 제정 추진본부’를 중심으로 일본의 ‘보통국가화’에도 박차가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헌법 9조 2항의 개정을 통해 금명간 자위대가 명실상부한 군대로 바뀌고 또 집단적 자위권도 갖게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일본이 ‘보통국가’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으나 과연 ‘어떠한 보통국가’가 될 것인지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에 매우 핵심적인 변수일 수밖에 없다.
▼6자회담 부진에 긴장고조▼
‘보통국가’를 지향하는 또 다른 변수로 대만이 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뛰어넘어 ‘대만공화국’ 수립의 꿈을 접지 않는 대만 집권당은 2006년 헌법 개정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양안관계와 미중 관계뿐 아니라 한미 동맹의 포괄화, 지역화, 그리고 ‘전략적 유연성’의 맥락에서 한중 관계에까지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관건은 북한 문제일 것이다. 재선에 성공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제1기에 비해 그 일방주의적 성향을 다소 완화하더라도 대량살상무기의 제거와 그 확산의 차단에는 일관된 원칙을 지킬 것인 바 북한 핵문제의 ‘해결’에 매우 과감한 정책을 취할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이미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내정자는 북한을 ‘폭정의 거점(outposts of tyranny)’으로 규정하며 자유 확산의 대상임을 암시하기도 했다.
이미 3년차를 맞는 북핵 관련 6자회담의 노력이 올해 상반기에도 별다른 가시적 성과를 못 내고 겉돌 경우 미국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이고 그동안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던 중국까지도 하반기 들어 모종의 ‘결단’을 내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북한뿐 아니라 중국까지도 자신에 대한 안보위협국으로 선언한 일본과 더불어 미국 또한 이와 같은 동아시아 ‘신냉전’의 설정에 동참할 것인지는 북핵과 관련한 중국의 방침과 상당히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 해결의 단초가 어떻게든 마련돼야 할 2005년은 겉보기와는 달리 가연성(可燃性)이 매우 높은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나 중국의 북핵 접근 방법에 가시적인 변화가 생길 경우 우리의 대북한 포용정책이 얼마만큼이나 ‘호흡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명확하지 않다. 또 북핵 문제와 남북 협력 사이의 병행론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 아니면 연계론이 다시 대두할 것인지도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시각차 줄이기 적극 나서야▼
북핵 문제의 장기화로 우리 외교의 상당 부분이 ‘표류’하는 감이 없지 않지만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실질적’인 결과를 위한 적극 외교를 설계할 때다. 그동안의 6자회담이나 남북 간의 대화는 어찌 보면 ‘차이는 인정하되 공통점을 모색하는(구동존이·求同存異)’ 조심스러운 방법이었다면 향후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공통점을 모색하면서 기존의 입장 차이도 줄여나가는(구동축이·求同縮異)’ 좀 더 적극적인 접근이어야 할 것이다.
정재호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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