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순덕 칼럼]‘고양이’는 누구나 될 수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05년 1월 28일 17시 53분


편 가르기로도 부족해졌다.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의 취업 장사가 드러나자 ‘회사 간부는 안 했느냐’는 공방부터 시작해서, 기다렸다는 듯 ‘거기뿐인가’ ‘권력형 청탁은 없나’로 이어지더니, 급기야 ‘그러는 당신은 깨끗한가’, 심지어는 ‘이 판에 다 까보자’까지 번지고 있다. 누구나 아무라도 물어뜯을 것 같은 집단 마녀사냥의 사회분위기다.
때맞춰 교사들의 성적 조작과 의대 교수들의 학위 거래 혐의가 터졌다. 잊을 때쯤 돼 재등장한 재벌의 기업인수 비리 의혹쯤은 가볍고도 자연스럽다. 지금 안 걸린 사람이라고 안심해선 곤란하다. 좀 있으면 조상 잘못이 드러나 망신당할 수 있다. 한때 구악(舊惡)으로 몰렸던 부패 정치인들이 이젠 화장실에서 웃을 판이다.
공직자가 아니고, 돈이 오가지 않았어도, 공익(公益)보다 사익(私益)을 따르면 그게 부패라고 했다. 이번에 처음 집중포화를 받는 ‘사회적 약자’들은 억울할지 모른다. 어제의 주류세력 부패에 비하면 10분의 1도 안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사람들이 더 분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도덕한 기득권층을 공격했던 도덕적 집단이 왜 결국 똑같아지냔 말이다.
▼부패의 민주화, 폭로의 평등화▼
도덕 불감증이라는 말에도 불감증이 생긴 시대, 난감한 주제에 대해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ly correct) 글쓰기 요령은 나도 대충 안다. 초등학교 때부터 선생님한테 검사받는 일기를 수없이 쓰며 익힌 터다. 어디랄 것도 없이 썩은 사회를 개탄한 뒤, 그래도 꼿꼿한 사람들이 곳곳에 있어 희망적임을 일깨우고, 다같이 인성교육과 도덕 재무장운동에 나서자고 마무리하면 과히 욕먹진 않을지 모른다. 미워하며 닮는다는 옛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 속담을 곰곰이 뜯어보니 해답이 보이는 것 같다. 며느리한테 잔소리하는 시어머니만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세월이 흘러 시어머니 자리에 앉게 되면 아무리 젊어 착했대도 시어머니처럼 변하기 마련인 거다. 그게 권력의 속성이다.
고양이한테 생선가게 맡기느냐는 속담도 권력과 부패의 관계를 말해준다. 생선가게를 맡기 전엔 고양이 아닌 강아지였을 수 있다. 처분대로 할 수 있는 생선과 기회가 주어진 순간, 누구라도 고양이로의 변신이 가능해진다. 그렇지 않고서야 착한 며느리가 모진 시어머니 되고, 노조가 악덕 경영주처럼 타락할 리 없다.
그러나 당장 노사정(勞使政)과 시민단체가 모여 부패추방 사회협약을 맺는대도 부패가 없어지긴 힘들다. 사적인 이익에 움직이는 인간의 속성상, 부패를 없앨 순 없다는 게 조직심리학자 나이절 니컬슨의 지적이다. 1992년 이탈리아의 부패척결운동 ‘마니 풀리테’ 이후 1970년대 7%였던 뇌물이 20%로 늘었다는 후문이다. 경제발달로 더 많은 돈이 오가면서 국제적으로 부패가 증가하고 있다는 세계은행 보고도 있다.
▼정직한 리더십이 앞장서라▼
그렇다고 부패한 모든 이를 용서하자는 건 아니다. 공분(公憤)을 끌어안고 이대로 살 수도 없다. ‘자리 평준화제도’를 도입해 회전의자에 돌아가며 앉자고 하고 싶지만 새 기득권의 반대 때문에 성사될 리 만무다. 그렇다면 1910년에 벌써 부패에 관해 쓴 정치학자 로버트 브룩스의 말대로, 거리를 청소하듯 부패도 끊임없이 치워가며 살 수밖에 없다.
거리에 나서기 전 국정을 책임진 사람들이 할 일이 있다. 정직한 리더십이 맨 앞에 서는 일이다. 정부부패든 민간부패든, 부패 청소는 그래야만 표시가 난다. 규제철폐와 경제자유화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강력한 반(反)부패기구를 만들고도 규제를 계속 만들면 그걸로 돈 버는 부패도 늘어난다는 것을 ‘오렌지 혁명’의 나라 우크라이나가 입증하고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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