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DJ 당선 직후 과거 자료 대거 불태워”

  • 입력 2005년 2월 4일 14시 36분


천용택 前 국정원장. 동아일보 자료사진
천용택 前 국정원장. 동아일보 자료사진
김대중 정부 출범 직전 안기부가 과거의 자료를 대거 불태웠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대중 정부시절 국정원장을 지낸 천용택 전 원장은 4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승리하고 난 뒤 2~3개월 동안 국정원(당시 안기부)에서 많은 서류를 태우느라고 세곡동 하늘이 새카맣게 연기에 뒤덮였다는 풍문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그 때 일부 서류를 많이 파기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든다”면서 “정치권에서도 그런 말이 오고 가곤 했다”고 덧붙였다.

즉 정권 교체 기에 국정원 직원들이 문제될만한 문건들을 고의로 폐기했다는 것.

그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고해성사하는 기분으로 마음을 비우고 조사에 협조하지 않는 한 진실 규명이 상당히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전임 이종찬 원장에게서 업무를 물려받은 뒤 이와 관련된 보고를 받은 적은 없다”면서도 “국정원이 의도적으로 자료를 파기했는지는 지금 조사해도 금방 밝혀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천 전 원장의 이 같은 주장은 국정원 과거 의혹 사건과 관련된 국정원 내부 자료가 상당 부분 존재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파장이 일 조짐이다.

국정원 과거사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과거사위·위원장 오충일 목사)의 민간위원측 간사인 안병욱 가톨릭 대 교수는 3일 기자회견장에서 “처음에는 국정원 내에 엄청난 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을 줄 알고 그것에 끌려서 과거사위 활동 을 하게 됐지만 실제 문서를 확인해본 결과 예상한 만큼 자료가 보존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자료가 불충분한 이유에 대해 안 교수는 “안기부 자체 내 규정에 의해 폐기됐거나 아예 문서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은 것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안 교수는 동아닷컴과의 통화에서 “당시 안기부가 자료를 폐기했다고 하더라도 불법을 저지른 것은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국정원의 문서관리규정이 만들어진 99년 이전에는 일정한 때를 잡아 문서를 대량으로 폐기했다”면서 “하지만 영구보존해야 할 중요 문서는 현재 국정원에 모두 보관 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안 교수는 하루 전 기자회견에서 자료 부족을 언급한 것에 대해서도 “기대치에 못미치긴 하지만 상당한 자료가 있는건 사실”이라면서 “최대한 자료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박해식 동아닷컴기자 pistols@donga.com

▼관련 대담 전문▼

-사실 과거사를 규명하겠다고 하지만 많게는 한 40여년 전 일까지 포함이 돼 있잖아요. 과연 정확한 정보와 증언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데요.. 가장 궁금한 것이..국정원장을 지내셨으니까..국정원에 관련 자료들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까?

천용택 전 국정원장 “예 그렇습니다. 국정원의 과거 자료들은 원칙적으로 영구 보관하고 있을 것으로 믿지만 자료들에 대해서 제가 재직 기간에 확인하거나 보고 받은 바가 없기 때문에 얼마나 보관이 되어있는지 모르겠고요. 다만 국민의 정부가 대통령 선거에 승리하고 나서 집권 한 2~3개월 그 기간에 국정원에서, 그때 안기부 시절에 많은 서류를 태우느라고 세곡동 하늘이 새카맣게 연기에 뒤덮였다는 그런 풍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부 서류를 많이 파기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드는데 아마 살아있는 사람들이 고해성사하는 기분으로 마음을 비우고 조사에 협조하지 않는 한 진실 규명에 상당히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부임하기 직전에 세곡동 하늘이 새카맸다. 즉 자료를 태웠다 그런 말씀이시죠?

천용택 전 국정원장 “예 그때 정치권에서 그런 말이 오고 가곤 했습니다.”

-실제로 그렇다면 원장이 되시고 난 뒤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 혹시 알아보시진 않으셨습니까?

천용택 전 국정원장“그때 제가 제 앞에 이종찬 국정원장에게 물려받았기 때문에 그 때만해도 그런 데 관심 가질 일이 없었고 보고 받은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도 자료 파기가 의도적인 부분이 있었는지 진상이 밝혀져야 할 필요는 있겠네요.

천용택 전 국정원장“그렇죠. 지금 조사를 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사실적으로 금방 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예 그렇군요. 국정원장 같은 자리는 정치적으로 임명이 되기 때문에 실무자들 입장에서 보면 자기 보호 의식이 상당히 강할 수 있잖아요. 조금 전에도 말씀하셨습니다만 결국은 진실을 위한 증언을 확보할 수 있느냐 이것이 관건 아니겠어요? 그런데 현직에 계신 분들, 최근의 사건에서 보면 아직도 현직에 있거나 또는 과거 일이라도 과연 선대 일들을 밝힐 수 있을까? 후배들이 말이죠.

그러나 또 이런 생각도 들거든요. 진실을 밝히는 데 목적을 둬야지 처벌을 하는데 목적을 둬서는 과연 용기 있게 얘기를 할 수 있겠는가 이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천용택 전 국정원장 “저도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이것이 역사 앞에 부끄러운 과거지만 한번 밝히는 것이 역사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 때 입장에서 보면 상사의 명령에 의해서 하나의 행동을 했을 뿐인데 이제 역사의 심판을 받고 과거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명예가 손상되고 손해를 볼 것을 생각하면 협조를 하고 싶지 않은 그런 느낌을 가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당사자들이 역사 앞에 겸허하게 고해성사 하는 기분으로 임해야 되고 우리가 그런 과거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폭적으로 협조하고 협력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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