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진영에서는 ‘뉴 라이트’의 연대 움직임이나 ‘자유지식인선언그룹’의 성명 발표 등을 일단 관망하고 있다. 겉으로는 다양한 사상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에서 환영한다고 말한다. 또 한국의 보수가 과거 반공주의적 풍토 속에서 독점적 위상을 누리면서도 체계적 이론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 와서 다시 이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진보 진영 내부에서는 범보수층의 새로운 정치 사회적 움직임이 전통적 이념지표와 동떨어져 있다거나 아니면 기존 보수층의 주장과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한 국민의 실생활과 관련된 정책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너무 이데올로기 중심의 담론에 치중하고 있어 대중적 호응을 확산시키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한다.
▽보수 지식인의 조직화에 대한 비판=‘민주화를 위한 교수 협의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손호철(孫浩哲) 서강대 교수는 “한국 정치의 이념 분포를 분석하자면 민주노동당이 진보, 열린우리당이 개혁 보수, 한나라당이 보수인데 뉴 라이트는 개혁적 보수를 들고 나오면서 열린우리당을 비판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수층의 새로운 움직임이 친노(親盧)와 반노(反盧)의 흑백논리로는 설명할 수 있어도 보수와 진보의 전통적 이념의 스펙트럼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게 손 교수의 주장이다.
손 교수는 “뉴 라이트 진영이 반공주의가 아닌 자유주의를 화두로 들고 나왔다면 사상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자유주의 원칙에 투철한 입장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해야 하는데 개정을 지지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드러냈다”며 “뉴 라이트가 전통적 보수세력의 반핵 반김(反核 反金) 주장과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보수적 사회운동의 승패는 결국 대중적 지지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는데 중도를 배격한다는 식의 발언은 스스로의 입지를 좁히는 자충수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호기(金晧起) 연세대 교수는 “노무현(盧武鉉) 정부가 정권 창출에 성공한 것은 결국 진보는 물론 중도세력의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라면서 “자유지식인선언그룹처럼 노골적으로 중도를 배격하면 결국 보수층은 정권 창출에 또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중적 호소력을 얻기 위해서는 자유주의니 국가정체성이니 하는 이데올로기적 접근보다는 경기불황 타개와 청년실업 해소 등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내용에 대해 구체적 대안과 담론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진보와 보수의 분화=진보 성향 학자들의 모임인 ‘학술단체협의회’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세영(李世永) 한신대 교수는 민주화 이후 한국 지식인 사회가 민중운동세력, 시민운동세력, 새로운 보수주의운동세력 등 3개 그룹으로 분화해왔다고 분석했다. 민주화운동으로 한목소리를 내던 지식인들 중 일부와 기존 보수적 지식인들 중 일부가 1988년 이후 시민운동에 참여하면서 한 그룹을 결성했고, 최근 뉴 라이트나 자유지식인선언그룹은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에서 다시 이탈한 그룹이라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민중운동세력과 시민운동세력의 일부가 힘을 합쳐 노무현 정부의 출범에 기여했지만, 민주노동당이 의회에 진입하고 노무현 정부가 현실주의적 노선으로 전환하면서 진보 진영에서도 분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보수 진영은 새롭게 전열을 정비 중인 양상이라고 말했다. 즉, 진보 진영이 민노당 지지 세력과 열린우리당 지지 세력으로 분화해 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보수 진영이 뉴 라이트와 기존 보수세력으로 분화할지 아니면 한목소리로 대응하게 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앞으로 중도 성향의 시민운동세력을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 중 어느 쪽이 더 많이 끌어들이고 포용하느냐가 향후 이념 지형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진보 진영은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대안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반면 보수 진영은 세계화와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가 낳은 빈부격차와 반미정서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문을 받고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