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안병준]‘발전민주주의’ 보여준 泰國정치

  • 입력 2005년 2월 13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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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7일 실시된 태국 총선의 결과는 ‘발전민주주의’의 등장을 보여준다. 여당인 태국애국당의 탁신 친나왓 총리가 전례 없이 대승한 것은 국민들이 그의 경제발전정책을 지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처럼 실적 위주의 민주주의가 태국에서 정착하고 있는 것은 한국 정치에도 중요한 교훈을 시사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여당은 이슬람교 분리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남부를 제외한 전국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전통적으로 야당 세력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수도 방콕에서도 여당이 크게 앞섰다. 여당은 하원 500석 가운데 4분의 3 이상을 확보해 태국 정치사상 처음으로 일당정부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며 참으로 인상적인 것이다. 최대 야당인 민주당은 거의 완패해 의원내각제도 운영에서 중요한 요소인 각료 임명에 대한 승인권도 행사할 수 없게 됐다.

▼탁신총리 경제발전 일궈 재신임▼

우리의 이목을 끄는 것은 왜 이러한 결과가 나왔느냐는 점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대다수의 태국 국민이 과거 4년간 탁신 총리가 이뤄놓은 경제실적과 이번 선거에서 그가 새롭게 내세운 공약을 더욱 신뢰하고 지지했기에 그와 그의 당을 선택한 것이다. 탁신 총리는 그의 재임기간 중 연간 6% 이상의 경제성장을 기록했고 특히 농민들에게 제공한 장기저리의 재정지원은 빈곤을 퇴치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그 결과 국민의 생활수준은 가시적으로 향상됐고 이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탁신 총리는 이처럼 국민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동시에 정부 내의 부패를 줄였고 대미, 대일, 대중관계를 개선했으며 지난해 말 발생한 지진해일(쓰나미) 재난을 극복하고 이재민을 돕는 데도 현장에 직접 가서 지휘하는 등 과감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한편 야당은 그의 통치 스타일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고 그의 권력행사에 대해서도 ‘독재’라고 공격했으나 보다 나은 정책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언론도 이와 비슷한 담론을 주도하며 탁신 총리가 밀어붙이는 정책이 소수의 권한을 무시하고 토론과 타협을 중시하는 의회민주주의를 훼손한다고 비난해 왔다. 총선을 전후해 그들은 탁신 총리의 일당 통치가 초래할 권위주의가 견제와 균형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심각한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신 총리는 총선을 통해 국민의 전폭적인 신임을 획득했다. 이제 사실상 독주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는 앞으로 4년간 태국을 재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선거 이후 주식시장에서 주가는 오르고 태국경제에 대한 국제평가기관들의 신용도도 제고되고 있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분명히 태국 국민은 탁신 총리가 현재 추진 중인 무상의무교육제도, 대대적인 사회간접자본시설 투자, 빈곤과 마약 퇴치운동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태국에서 둘째가는 부자 기업인이던 탁신 총리는 이처럼 ‘공공선’을 추구하는 데에 성공을 거둔 덕분에 동남아에서 가장 강력한 지도자로 부각하고 있는 것이다.

태국정치는 법치주의와 시민문화를 제도화한 선진민주주의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의 기초생활 개선과 경제발전에 치중한 ‘발전민주주의’를 제시한 것은 틀림없다.

▼경제도약이 실용주의적 정치▼

사실 1997년 갑자기 외환위기를 겪은 뒤 동남아시아에서는 이처럼 정치지도자의 ‘실적’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실적을 낸 지도자는 이를 바탕으로 정권을 행사하고 있다. 작년에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서는 전임 정권이 경제실적을 내지 못했고 국민생활을 향상시키지 못했기에 글로리아 아로요 씨와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씨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것이다. 탁신 총리는 동남아에서 최고의 경제도약을 일궈냄으로써 국민의 여망에 잘 부응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실용주의적 정치를 일깨워주고 있다.

한국 정치인들도 이제 눈을 밖으로 돌려 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실상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보다 폭넓은 비전을 실현하는 정치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안병준 KDI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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