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명 글 전문]의기 논개와 전여옥 대변인

  • 입력 2005년 2월 16일 15시 34분


진주에 가야 할 것만 같다. 놀러 가는 것이 아니라 충절의 의기 논개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의기 논개가 왜장을 안고 남강에 뛰어 든 의암과 사당을 찾아 사과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전에 먼저 사죄를 드린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가. 나는 그를 욕되게 한 원인 제공자가 되었다. 허나 사과를 해도 죄송한 마음은 쉽게 가시지가 않을 것이다.

‘한 나라 당’의 전여옥 대변인이 왜 가당치도 않게 의기 논개가 되고 싶다는 소리를 했을까. 입 다물고 가만히 있었으면 좋았을 걸 왜 논개를 입에 올려 사람들의 입 초사에 오르는가. 전여옥 대변인은 자신이 논개가 되고 싶다고 하면 ‘뭐 전여옥이 논개 가 되겠다구? 그래 맞아! 충분히 논개 가 되고도 남을 여자지. 물불을 모르니까.’

이럴 줄 알았을까. 안타깝다. 너무 착각을 한 것 같다. 솔직하게 말해서 전여옥 대변인과 의기 논개 사이에는 여성이라는 것 말고 비슷한 곳이 한 군데도 없다는 느낌이다. 어느 누구라도 의기 논개와 비교한 전여옥 대변인의 긍정적 공통점을 지적해 준다면 즉시 사과를 할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알겠지만 논개는 임진왜란 때 왜장인 ‘게야무라 후미스케’를 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목숨을 조국에 바친 충절의 의기다. 후세는 의기 논개를 기려 그가 투신한 바위를 의암이라 부르고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냈고 대 시인인 수주 변영로 선생은 논개의 충절을 시로 남긴다.

논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위에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압맞추었네.

아. 강남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 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 보다 더 푸른

그 물결위에

양귀비 꽃 보다 더 북은

그 마음 흘러라.

-수주 변영로 지음

며칠 전 나는 “전여옥 대변인과 효녀 심청’이라는 글에서 한나라당의 전여옥 대변인에게 효녀 심청이가 되라고 간곡하게 당부했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에게 다함없는 애정과 충성을 바치며 ‘이 생명 다하도록 멸사봉공하는 전여옥 대변인은 이제 사면초가에 싸여있는 박근혜 대표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효녀 심청이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전여옥 대변인이 몹시 화가 난 모양이다. 앞으로 만의 하나 박근혜 대표가 집권할 경우 박 대표에 대한 무한한 충성의 보상으로 비례대표 의원보다는 훨씬 대우를 받는 출세를 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전여옥 대변인에게 효녀 심청이가 되어 사라지라는 것은 출세를 포기하라는 말로 들렸을 것이다.

물론 세속의 출세 따위야 전여옥 대변인이 떠도는 구름처럼 여기리라고 굳게 믿지만 화는 단단히 난 모양이다. 그러기에 의기 논개의 아름다운 이름까지 빌려서 자신을 과대 포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속 좁은 생각까지 하게 된다.

전여옥 대변인에게 묻는다. 전여옥 대변인의 어느 구석에 의기 논개와 같은 충절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다시 묻는다. 전여옥 대변인은 평소 한번이라도 의기 논개처럼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목숨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을 해 본적이 있는가.

더 한번 묻는다. 충절의 의기 논개를 입에 올린 것이 논개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지는 않는가. 한나라당의 아니면 말고 식의 질문이 아니라 꼭 듣고 싶은 질문이다. 나는 전여옥 대변인의 진심을 알고 싶은 것이다.

나는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이 걸어 온 길을 살핀다. 대개의 경우 반듯한 사람들은 걸어 온 길 역시 반듯하다. 또한 그 사람만 보지 않고 그 옆에 누가 있는가도 살핀다. 도둑의 곁에는 도둑들이 몰려 있게 마련이고 공자님 곁에는 역시 좋은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나는 세월의 흐름을 제법 오래 경험한 사람으로서 그 믿음을 굳게 지킨다. 이 세상에 긴 척 하면서 아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입으로는 옳은 소리를 하면서 행동을 아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경우, 한 입을 가지고 수도 없이 다른 말을 하고 이해득실만을 따져 의리와는 아예 담을 쌓고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도 까맣게 잊고 영 다른 딴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박근혜 대표에게 지금은 더 할 나위 없는 충신인 전여옥 대변인의 경우도 그가 과거의 할 말을 기억해 보면 어떻게 박근혜 대표 곁에 붙어 있는지 참으로 민망스럽다.

전여옥 대변인은 2004년 2월24일 조선일보 인터넷사이트인 “전여옥칼럼에서 ‘포스트 최병렬’이 박근혜 라니!”라고 열을 올리면서 겁나게 비판했다.

“나는 박근혜란 정치인에 대해 회의적이다. 박근혜 의원은 스스로 벌고 쌓은 정치적 자산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정치적 유산’의 상속자로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정치적 경력이나 정치활동을 볼 때 그는 여전히 박정희의 그늘에 묻혀 있다. 박정희는 죽었지만 ‘정치적 왕조’로서 딸 박근혜를 통해 ‘유훈정치’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치인으로서 박근혜는 실망스러웠다. 그는 여전히 영남권의 공주로서 특정지역의 편애 속에서 안주했다. 박근혜의 많은 것이 ‘거품’이었음이 들어났다. 한나라당이 ‘포스트 최병렬’로 박근혜의원을 선택한다면 그것이이야 말로 화약을 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것이다. 퇴색한 수구보수정당에 분칠을 하는 식이다. ”

자 그럼 이제 박근혜 대표의 충신이 된 전여옥 대변인의 박근혜관은 어떻게 변했는가. 전여옥 대변인은 자신이 비판하던 박근혜 대표에게 어떤 방법으로 충성을 바치는가. 전여옥 대변인은 한나라당의 제천 연찬회에서 박근혜 대표를 비판한 당내 세력을 비겁하고 파렴치한 뺑덕어멈이라고 몰아 세웠다.

박근혜대표를 겁나게 비판하던 국회의원 이전의 인간 전여옥과 한나라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이 되고 당의 대변인이 된 이후의 인간 전여옥은 어떻게 다른 사람인가.

무엇이 인간 전여옥을 저렇게 변모하도록 만들었는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전여옥 대변인의 변신이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어렵다는 것이다. 상식이 보통사람들의 보편적 판단 기준이라고 한다면 전여옥 대변인은 상식을 훌쩍 뛰어 넘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고 할 것이다.

전여옥 대변인은 베스트 셀러 작가다. 비록 표절 시비에 올랐지만 밀리언셀러인 ‘일본은 없다’와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를 썼다. 여성들에게 테러리스트가 돼라 고 소리 높여 외쳤던 전여옥 대변인은 이제 스스로 언어의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그의 거침없는 언어의 테러는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어서 조선일보를 통해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지 않는 것이 좋았다’라고 열을 올리는가 하면 ‘기쁨 못 준 대통령은 물러나길’ 바란다고 퍼렇게 날을 세웠다. 그런 ‘철의 여인’에게 효녀 심청이가 되라고 권한 나를 얼마나 가소롭게 알았겠는가 생각을 하면 내 어리석음에 등에서 땀이 솟는다.

그러나 전여옥 대변인이 그토록 되고 싶어 하는 논개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전여옥 대변인이 심청이 보다는 논개가 되고 싶다고 하는 것은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대통령의 측근임을 빙자해 언론이 떠들어 댄 것처럼 선산에 투기를 했다는 나나 부정한 정치자금을 받아 줄줄이 감옥에 간 자들을 안고 논개처럼 강물에 뛰어 들어 함게 죽겠다는 것이다.

물론 함께 빠져 죽어야 인간들 중에는 전여옥 대변인이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지난 대선 때 이회창 전 총재의 측근으로 수백억 정치자금을 ‘차떼기’로 받아 쇠고랑을 찬 ‘한 나라 당’ 고위 간부들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고 이른바 5.16 쿠데타로 정권을 강탈한 군부 독재세력과 그 앞잡이 지식인들도 포함이 될 것이며 반인간적 반민족적 반인도적 반민주적 국가 보안법으로 민주인사를 잡아다가 고문을 하고 불구를 만들고 죽게 만든 인간들도 포함이 될 것이다.

어찌 그 뿐이랴. 멀쩡한 언론사를 자진헌납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강탈해 독재정권의 나팔수로 만들고 무슨 장학회라는 이름으로 수십 년 간 지배해 온 인간들도 당연히 포함 될 것이다.

또 있다. 정론 직필의 언론인 사명을 외면하고 권력에 아부하는 사이비 언론사 주인과 그들과 부화뇌동, 여론을 왜곡하고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만든 그 잘난 언론인들도 당연히 포함되리라고 굳게 믿는다.

한마디만 더 하자. 분단은 천추의 한이다. 그러나 분단보다도 더 깊은 한은 바로 지역의 벽으로 가로 막힌 동서의 분단이다. 이른바 지역감정이라는 망국병으로 선량한 국민의 마음을 갈 갈이 찢어 놓은 인간 망종들. 지역감정을 선동해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고 대통령을 해 보려는 사이비 정치 범죄꾼들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아아 또 있구나. 머리 좋아 좋은 대학 나오고 고시에 합격되어 판검사 지내고 지역감정 부추겨 국회의원 당선되고 현행범이 아니면 잡혀가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셔서 의사당 안에서 멀쩡한 동료의원을 간첩으로 몰아 버린 그저 그렇고 그런 법조출신 의원님들.

이런 인간들을 모두 안고 강물에 뛰어 드는 논개 가 된다면 전여옥은 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논개며 이 나라를 위해서도 그 보다 더 기쁜 일이 없을 것이다.

효녀 심청이 보다는 충절의 ‘의기 논개’ 가 되고 싶은 전여옥 대변인의 비원이 알려지자 많은 네티즌들이 들고 일어났다. 어떻게 감히 ‘의기 논개’를 입에 담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허나 내 입으로 내가 말하는 데 웬 말들이 많으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말이라고 다 말이 아니고 말다워야 말이 된다는 것이 네티즌들의 생각이고 그 역시 옳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하면 말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말을 하라는 말이다. 전여옥 대변인이 논개가 되겠다면 나는 예수님이 되겠다는 네티즌도 있다. 모두 천부당만부당이다.

사람은 평생을 살면서 수도 없이 변한다고 한다. 지금 논개가 되고 싶다고 했다가 고초를 겪고 있는 전여옥 대변인도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변할지 모른다.

속은 모르지만 주위 시선을 아예 무시하고 오로지 내 길만 가겠다는 만용에 가까운 배짱으로 ‘돌격! 앞으로!’ 하는 전여옥 대변인도 앞으로는 틀림없이 상식과 원칙을 존중하는 상식의 지식인으로 변하리라 굳게 믿는다. 왜냐면 전여옥 대변인만한 자질의 사람이 어디 그리 흔한가. 어찌 변하지 않고 견딜 수 있겠는가.

이제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겠다. 심청이도 좋고 논개도 좋지만 이제 좋은 말 가지고 못된 짓들은 고만 하라는 것이다. 대변인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전여옥 대변인은 논평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한번 보라. 시퍼렇게 날을 세운 비수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 여와 야를 가릴 것 없이 대변인은 상대당의 속만 뒤집어 놓으면 잘 하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범한다. 그러기에 사람이다. 다만 깨닫지 못하면 영 희망이 없다. 나는 전여옥 대변인이 말로만 ‘효녀 심청’과 말로만 ‘의기 논개’가 아닌 오늘의 이 시대가 갈망하는 진정한 ‘효녀 심청’과 ‘의기 논개’가 되기를 바란다.

그 때는 대통령의 측근임을 빙자해 땅 투기나 한다는 나 같은 인간이 시비를 거는 일은 물론 없으려니와 전여옥 대변인에 대해 온갖 험담을 늘어놓던 지식인들도 ‘전여옥 만세’를 소리 높여 부르리라고 굳게 믿는다. 자기 사랑은 자기가 지고 다닌다는 선인의 말은 진리다.

2005년 2월 16일

이기명 (국민참여연대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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