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는 ‘때’를 기다려야 할지 모르나 유권자의 한 사람이 개헌문제를 생각하는 거야 누구도 막을 수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게다가 개헌론이 거론될 때마다 대통령 ‘4년 중임제’ 안이 마치 여론의 지지를 얻은 ‘공약수’인 양 논의되는 것도 그냥 넘겨들을 수 없다.
왜냐 하니 첫째, 4년 중임제 개헌안이란 앞으로도 대통령책임제의 권력구조는 유지한다는 걸 전제로 한다. 반세기를 넘긴 헌정사의 경험에 비춰 ‘대통령무책임제’란 힐난조차 받는 현재의 권력구조를 그대로 유지해야 할 무슨 설득력 있는 근거라도 있다는 것일까.
둘째, 4년 중임제가 대선과 총선 시점의 엇박자로 잦아진 선거횟수를 줄일 수 있다는데 그게 유일한 방법일까. 그보다도 4년 중임제엔 아무런 위험부담도 없는 것일까. 전문가도 쉽지 않은 이런 논의에 비전문가가 끼어들기란 물론 조심스럽다. 그러나 건국 이후 헌정사의 전 과정을 살아나온, 이젠 많지 않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꼭 증언해둘 것이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모르거나 잊고 있는 그때그때의 ‘헌법이론’ 아닌 ‘헌법현실’에 대해.
▼날치기 작품 ‘대통령 책임제’▼
우선 오늘날 자명한 제도처럼 전제되고 있는 대통령책임제는 사실 제헌국회에서 유아독존 이승만 박사의 옹고집으로 헌법기초위원회가 성안했던 내각책임제를 하룻밤 사이에 바꿔친 날치기 작품이었다.
대통령책임제는 그 출발이 자랑스럽지 못한 전사(前史)로 얼룩져 있을 뿐 아니라 50년 헌정사에 단 한 차례도 온 국민이 숭앙하는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했다. 우리는 반세기의 실패한 헌법현실을 돌아보며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이란 말인가.
국가의 최고 권력기관을 체육관에서 자격 없는 무리끼리 추대하는 게 아니라 온 국민이 직접 뽑는 직선제를 쟁취한 것은 6월 민주항쟁의 양보할 수 없는 성과요, 그 뜻은 크다. 그러나 최고 권력을 ‘무책임한 대통령’이 아니라 ‘책임지는 의원내각’에 위임하고 그 의원을 국민이 직접 선출한다면 그 뜻이 달라질까.
원래 국회에서 간접 선거키로 된 대통령의 첫 임기에서 실정을 거듭한 이승만 박사가 재선될 가망이 없자 6·25 전쟁 중에 갖은 무리수를 써가며 악명 높은 ‘발췌 개헌안’을 통해 마련한 것이 대통령 국민직선제다. 미안하고 민망한 얘기지만 대통령을 직접 뽑는 ‘국민’이란 부산 피란 시절의 옛날이나 오늘의 디지털 네티즌 시대나 선거의 광풍 속에서 온갖 선전선동에 나부끼는, 요즘 유행어로 휘발성(volatility)을 갖는다는 점에선 다를 게 없다. 그렇게 뽑은 대통령이 가까스로 차점자를 누르고 집권하면 그때부터 국민과 국론은 정점에서부터 분열되는 역사를 우리는 살아 왔다.
‘4년 중임제’란 것도 헌정사의 과거를 돌아보면 새롭지도 않고 안심할 수도 없다. 4년 중임제는 장기집권의 비방을 받는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이 취임할 당시의 제도로 이미 시험이 끝난 낡은 제도다. 어느 대통령이건 7∼8년 집권하면 눈에 띄는 치적이 쌓이고 그때쯤 되면 이 ‘불세출의 지도자’에 대해서만은 3선 제한을 풀고 ‘중단 없는 전진’에 길을 열어주자는 주장이 나오기 마련이다. 과거에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독재권력 낳은 헌정사 잊었나▼
정치의 치적은 때로 장기집권 내지 정권의 안정을 요한다. 어느 민주국가에서나…. 그걸 합법적으로 가능케 해주는 제도가 내각책임제다. 총선에 승리만 하면 한 정당이나 정당연합이 아무리 장기집권해도 독재한다고 비난받지 않는다. 전후의 일본 독일 오스트리아처럼….
통일의 대업을 앞둔 분단국이기 때문에 대통령중심제라야 한다고? 한동안 그럴싸했던 이 논의는 내각책임제를 운영해 온 분단국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이미 통일을 이룩한 마당에 대통령제를 고수하고 있는 한국만 분단을 극복 못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최정호 객원大記者·울산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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