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삶에 가장 직접적인 파장을 미치는 것은 역시 에너지 가격이다. 한국은 경제성장만큼이나 에너지 수요가 빨리 증가한 나라다. 철강, 석유화학, 조선 등 에너지 집약적 산업이 성장했고 자동차, 에어컨, 가전제품의 보급 확대도 에너지의 중요성을 더 크게 한다. 한국 수입원유의 70%는 중동산이다. 반면 미국은 20%, 프랑스는 33%의 에너지를 중동에서 수입한다.
한국은 건설 및 플랜트 산업으로도 중동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과거 두 차례 오일쇼크 뒤 중동지역의 건설 붐에 기여했다. 2003년 말 리비아의 서방세계 복귀 선언 및 이라크전쟁 후 재건에 따른 건설 수요 증가는 한국에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북한도 중동의 정치, 경제에 영향을 받는다.
북한의 최대 에너지 공여국은 중국이지만 과거에는 이란의 석유에 크게 의존했다. 이란과 시리아는 북한산 무기제품의 주요 수출시장이다. 미국 정부는 한 발 더 나가 두 나라가 북한산 핵물질의 고객이란 의심도 갖고 있다. 이란과 북한이 공동으로 미사일을 개발했다는 보도도 낯설지 않다.
중동의 정치 상황이 북핵 문제 해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이라크는 1월 30일 성공적으로 총선을 치른 뒤 헌법 제정(8월)-국민투표(10월)-총선(12월)으로 이어지는 정치 일정을 남겨두고 있다.
이라크 민주화의 성공은 미국의 북한정책과 맞물려 있다. 미국이 이라크 수니파 무장세력의 봉기를 성공적으로 진압하고 정치적 안정을 이룩하면 북핵 문제에 대해 더 우세한 위치에서 공세적으로 나설 것이다. 따라서 최근의 중동 상황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만든 요인인지도 모른다.
리비아가 핵을 포기하고 서방세계와 손잡는 체제 전환 결정을 내린 것은 북한에 중요한 모델이다.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토머스 랜토스 의원은 이달 14일 존스홉킨스대가 주최한 간담회에서 “2004년은 리비아의 전진을 위한 한 해였던 것처럼, 2005년은 북한의 해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백악관과의 긴밀한 인연을 매개로 2004년에만 세 차례 리비아를 방문해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를 만났고, 올 초엔 평양을 다녀왔다.
카다피는 핵시설을 미국으로 보냄으로써 서방세계와 손잡은 이래 유럽을 순방했고,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등 많은 유럽 지도자를 리비아로 불러들였다. 올 12월이면 미국과 리비아는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한다. 리비아 학생의 미국 유학이 시작될 것이며, 외국 투자가 낙후된 리비아 석유산업을 현대화할 것이다. 주목할 점은 이런 기적 같은 일이 리비아의 정권 교체 없이, 심지어 인권에 대한 문제 제기 및 개선의 조짐이 없어도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과 리비아의 상황은 같을 수 없다. 그런데도 리비아의 변신을 환영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평양, 서울, 워싱턴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변화의 함의를 잘 이해해야 한다. 중동의 역사적 경험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세심한 눈길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켄트 콜더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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