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해 초대 농림부 장관과 국회부의장을 지낸 죽산 조봉암(竹山 曺奉岩·1898∼1959·사진)이 바로 그 사람이다. 죽산은 일제강점기 3·1운동에 참여했다가 1년간 투옥됐고,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을 주도하다가 1932년에 붙잡혀 신의주교도소에서 7년을 복역했다. 독립운동으로 모두 세 차례에 걸쳐 9년 동안의 옥고를 치렀다.
죽산은 이번에 서훈이 이뤄진 김재봉, 조동호와 함께 1925년 조선공산당 결성을 주도했으며, 역시 이번에 서훈된 권오설과 함께 고려공산청년회 결성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그는 광복 전 사실상 공산주의에서 전향했고, 광복 후에도 1946년 6월 조선공산당에서 출당당한 뒤 여러 차례 반공노선을 천명했다. 또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건국훈장의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학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런 그가 이번 서훈명단에 빠진 것은 법리해석 때문이다. 현행 상훈법 8조 1항은 ‘사형,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의 형을 받은 자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죄를 범한 자’의 서훈을 취소하게 돼 있다. 이에 따라 이승만 정권시절 간첩 혐의로 체포돼 사형된 죽산은 서훈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그의 간첩 혐의는 이승만 정권이 정적 제거를 위해 조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1999년 죽산 서거 100주년을 맞아 동아일보 후원 학술토론회가 열린 뒤 당시 수사관의 간첩 혐의 조작 증언까지 나왔다.
현재 사면 복권의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으나 망자(亡者)는 사면 복권 대상이 아니다. 1991년 국회의원 88명이 제출했던 죽산 특별사면 청원안이 무산된 것도 그 때문이다. 또 국회에서 사면법에 사후 신원(伸寃) 조항을 넣어주거나, 국회특별법을 만드는 방안이 있다. 그러나 1991년 유사법안이 좌절된 경험이 있다.
유족들은 상훈법의 상훈 치탈조항을 상훈수여 이후로 국한시켜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헌법소원까지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죽산에 걸린 ‘저주의 사슬’을 풀 마법의 주문은 없는 것일까.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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