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960년대 말 비무장지대 감시초소(GP)에서 북파 공작원들을 지원하는 장교로 복무했다. 대부분 ‘불귀(不歸)의 객(客)’이 되었던 공작원들을 캄캄한 밤 풀숲에서 마지막으로 배웅하곤 했다. 생사가 엇갈리는 이 순간을 가장 선명하게 그려놓은 작품은 ‘마지막 그분’이다.
‘그분은(중략)/깜깜한 어둠 속을 한동안 응시하다/군사분계선을 넘어갔다/함께 가자 위협하지도 않고/뒤돌아보지도 않았다//작전에 돌입하기 직전/손마디를 하나하나 맞추며/수고스럽지만 하다가/다시 만나겠지요 하던 그분/숨소리 짜릿짜릿하던 그 순간에/무슨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을까/그게 그분의 마지막 말일 수도 있는데/나는 왜 가만히 듣고만 있었을까’(‘마지막 그분’ 일부)
모든 공작원이 입북을 강행하는 게 아니다. 중도에 되돌아와 미지(未知)의 운명을 초조하게 기다려야 하는 공작원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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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포기하고 밤새 분계선을 넘어와 다시 분계선 앞에 웅크리고 있는 그대 (중략) 줄담배 연기 속에 눈만 내놓고 딸딸이를 구석으로 밀었다 앞으로 당겼다 (중략) 통문 지나 먼지 속에 지프차 한대 들어온다/캄캄해진다, 후르르륵/등줄기에 불이 붙는다’(‘그대가 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 일부)
신 시인은 첫 시집 ‘무인도를 위하여’(1977년)를 펴낸 후 23년 동안 침묵하다 두 번째 시집 ‘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2000년)를 펴냈다. 그는 이번 시집의 권말 ‘시인의 말’에서 그간의 세월에 대해 “(GP생활에 대한 악몽들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시를 버렸다”고 쓰고 있다. 그러다가 그는 2001년 실미도를 찾았다가 떠오른 북파 공작원의 기억을 담은 시 ‘실미도’를 쓰면서 비로소 그 힘든 기억을 향해 ‘말문’을 텄다.
문학평론가인 최원식 인하대 교수(국문학)는 “(‘마지막 그분’ 같은) 기막힌 작별 속에 시인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자신의 몫으로 고스란히 떠맡았다”며 “그(신대철)가 긴 탈주의 끝에 악몽의 기억을 혼신의 힘으로 대면하기 시작했다”고 평했다.
신 시인은 한때 몽골을 방문한 적도 있다. 그곳 북한대사관을 지나면서도 불현듯 북파 공작원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걸 경험했다. ‘그때 천둥 번개 내리칠 때 앞선 발자국에 한발씩 포개어 사선 넘으면서 되돌아올 수 없는 길 뒤돌아보다 지뢰 밟고 하나씩 사라지고’(‘몽골 북한대사관 앞을 지나’ 일부)라는 기억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 시에서 ‘강에 떠내려 온 신원 미상의 그대/남이든 북이든 묻힐 데 없어/우리 가슴 속에 떠돌아다니는 그대/고이 잠들어라’며 기막힌 작별 끝에 돌아오지 못했던 분단의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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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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