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반이 극명하게 갈리는 갈등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었다는 회고에 수긍이 간다.
뭐든지 바꿔보자는 쪽과 이대로 가다간 나라가 무너지겠다는 쪽이 대통령을 향해 줄기차게 딴 함성을 지른 게 사실이다. 대통령은 당연히 온 국민을 아우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자니 번민이 많았을 테고 줄타기도 했을 터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앞장서서 편 가르고 갈등의 골을 깊게 판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진정으로 갈등의 중심에서 통합의 중앙으로 이동해 남은 3년을 경영하는 대통령이 보고 싶다. ‘운동권 모델’은 결코 선진화 모델이 될 수 없다.
지난 2년에 관해서는 국민 여러분이 내린 다양한 평가를 이의 달지 않고 수용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나에 대한 평가는 내가 할 것이라던 집권 초기의 모습과는 크게 다르다. 이런 겸허함이 벌써 나라의 분위기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 그렇다면 ‘잃어버린 2년이라고 할 만큼 성장잠재력이 퇴보한 시기’라는 경제학계의 비판도 깊이 새겼으면 한다. 과거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부(負)의 유산이 컸던 탓에 뜻대로 되지 않은 일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경제문제 해결에 국력을 모으고 귀에 거슬리는 걱정과 충고도 흔쾌히 수용했어야 했다. 또 열렬 지지층일수록 더 설득해, 정처(定處) 모를 개혁보다는 경제를 위해 벽돌 한 장이라도 나르도록 이끌었다면 어땠을까.
▼‘市場마음’ 따라야 경제 숙제 푼다▼
비정규직이 늘고, 장사는 안 되고, 소득격차는 더욱 벌어지는 고통스러운 일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음에 대통령은 송구스럽다고 했다.
나날이 삶이 힘겨워진 서민을 위로하는 대통령의 표정엔 진심이 배어 있었다. 문제는 양극화(兩極化) 해소를 역설한다고 고루 잘사는 나라가 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국가가 기업경영권과 사유재산권을 보호한다는 확신을 심고, 가진 자에게 유전죄(有錢罪) 덮어씌우는 저주증후군이 격차 완화에 도움 되지 않는다고 설득하는 게 더 유효하다. 이런 공감대를 만들어냈다면 ‘노조 무서워 비정규직만 늘리고, 세상 뒤집어질까봐 투자 꺼리고, 나라 안에서 눈치 보기 싫어 사람도 돈도 해외로 떠나는’ 현상이 덜하지 않았을까. 인간의 욕망, 기업의 생리, 돈의 마음을 읽고 정책이 이에 순응해야 경제가 풀리고 격차도 상향조정될 수 있다. 세계를 보자. 평등과 정의(正義) 실현이라는 달콤한 다짐보다는 자유와 경쟁을 보장하는 나라가 훨씬 평등하고 정의롭다.
대통령은 우리 경제의 경쟁력 향상을 강조하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전략으로 채택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기술혁신과 인재양성이 중요하다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기술진화를 선도하는 기업들에 지배구조를 따지기보다는 더 많은 인센티브를 주는 게 맞다. 경쟁력 있는 인재들이 나라를 등지지 않도록, 해외에 나간 인재들도 제 발로 돌아오도록 여건을 만드는 게 급하다. 기회는 균등하되 경쟁력 우열은 냉정하게 따지고 값을 달리 쳐줘야 ‘앞선 인재, 앞선 기술’이 먹고살 것을 창출한다.
▼“정부의 기업정책이 개혁대상”▼
기업을 통해 경제를 살리려면 기업들을 믿고 당장 과감하게 규제를 푸는 게 득책이다. 자영업자 비중이 너무 높다고 논평할 것이 아니라 투자하고 싶은 나라를 만들어 기업형 일자리를 늘리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정권이기주의, 부처이기주의를 자제하지 못하고 반(反)시장적 발상을 ‘개혁’이라 둘러대는 기간이 연장된다면 ‘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의 퇴보’도 진행될 수밖에 없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최근 보고서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기업을 먼저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부의 기업정책이 바로 개혁대상’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 밖에도 많은 경제 과제를 대통령은 열거했다. 그 숱한 숙제들의 해법을 보다 정합성 있게 짜내기 위해 정부는 마음과 귀를 더 열어야 한다. 그리고 화려한 약속보다 구체적 성과로 국민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
배인준 논설위원실장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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