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정재호]한미관계, 이익극대화 추구할 때

  • 입력 2005년 3월 1일 18시 30분


2004년 세계의 화두는 중국이었다.

그러나 이를 상세히 들여다보면 그 배경에는 미국이라는 ‘제국’이 유지해 온 국제정치 및 경제의 구조 안에서 진동을 일으키기 시작한 새로운 행위자에 대한 관심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즉 ‘아시아적 질서’가 전 지구적 체제로부터 독립적일 수 없기에 미국에 대한 치밀한 이해 없이 중국의 ‘부상’에 대해 제대로 된 대비를 하기는 어렵다는 말과 같다.

외세에 의한 무수한 침입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명맥을 유지해 온 우리는 기본적으로 ‘배외적(排外的)’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광복 후 남북 분단과 함께 냉전구조 속에 함몰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은 반세기 넘게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유지해 왔고 생존과 안보를 위해 ‘비대칭적’ 관계를 기꺼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통해 자신감을 얻고 또 국격(國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최근 우리는 대미 관계의 새 지평을 열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때로는 경험 부족이, 때로는 미시적 관리의 결함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우리의 능력과 지위(예컨대 미국의 7대 교역국)에 걸맞은 한미관계를 정립코자 하는 노력은 이념적 성향에 관계없이 긍정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美주도 세계질서 거부 못해▼

민주체제에서 특정국가에 대한 불만을 대중이 자유롭게 표출하는 것은 주권국으로서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일본과 미국뿐 아니라 최근에는 중국에 대한 부정적 정서도 적잖이 나타나고 있음을 볼 때, 향후 우리의 외교전략 수립에 있어 내부적 요인이 보다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론의 향배가 모든 외교정책의 수립에 그대로 반영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미국은 과연 어떠한가. 외세의 침입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지 않은 대부분의 미국인은 정치, 특히 국제정치에 대해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미국인의 14% 정도만이 여권을 소지하고 있으며 그들의 지역적 관심도 국경을 맞대고 있는 캐나다와 멕시코를 제외하면 대체로 유럽에 집중되어 있다. 미국 의회 의원들 중에서도 3분의 1 정도만이 여권을 갖고 있으며 외교위원회가 별 인기가 없는 상임위일 정도이다.

따라서 본토가 공격을 받은 9·11테러 이후 미국이 ‘흑백논리’에 기반을 두고 “총을 가진 포수(미국)는 곰을 사살할 수 있지만 칼만 가진 사냥꾼은 그럴 수 없다”며 오랜 동맹 파트너인 유럽의 미온적인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던 것이다. 유럽에 대해서 이 정도라면 미국이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에 대해 갖는 시각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으로 미국의 일방주의적 세계 경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 또한 명백하다.

이러한 미국에 대해 우리는 감정적 대응보다는 합리적 적응을 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당 부분 ‘제국’이 그려내는 구조와 규범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중등국가로서의 우리는 번영의 유지와 통일이라는 과제를 함께 이루어야만 하고 이를 위해서는 동북아에서 미국이 수행할 수 있는 전략적 ‘균형자’ 내지는 ‘중재자’ 역할에 대해 치밀한 고려를 할 필요가 있다.

▼국익위해 합리적 적응 필요▼

물론 여기서 말하는 합리적 적응은 ‘미국이 뭘 하든지 우리는 순응하면 된다’는 냉전시기의 작동방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우리가 가진 국익의 기준하에 미국이 우리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상관성(relevance)’을 창출해 내고 이를 통해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제 막 시작된 안보정책구상(SPI)에서 한미 간 논의될 ‘전략적 유연성’ 협상이 이와 관련한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이다. 이미 원론적 방향은 대체로 합의된 상황에서 각론의 세부사항에 대한 협의는 하나라도 간단히 할 수가 없다. 미국이 왜 우리를 필요로 하는지, 또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합리적으로 하나하나 따져본 뒤 줄 것은 주되 주지 말아야 할 것은 반드시 명시적으로 지켜야만 할 것이다.

정재호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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