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관대첩비를 보관 중인 야스쿠니(靖國) 신사의 궁사(宮司·주지)는 1일 반환운동을 벌여 온 한일 민간단체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굳이 궁사의 이런 말이 없더라도 꼭 100년 전 러일전쟁 때 함경도에 주둔한 일본군이 일왕에게 바칠 귀국 선물로 가져간 북관대첩비는 장물임이 명백하다.
3·1절인 이날 야스쿠니 신사 현장에서 취재하면서 도둑맞은 북관대첩비의 환국이 눈앞에 다가온 것 같아 반가웠지만 아직 적지 않은 난관이 남아 있음을 절감했다. 일본 정부와 신사의 ‘떠넘기기’ 식 궤변도 걱정이지만 한국 정부의 미적지근한 ‘눈치 외교’ 또한 반환 지체의 원인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일본 외무성은 그동안 ‘북관대첩비는 민간시설인 야스쿠니 신사의 것’이라며 반환 책임을 모두 신사 측에 떠넘겨 왔다. 한국 정부와 주일 한국대사관은 이 궤변의 벽을 넘지 못하고 그간 반환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며 사실상 개입을 회피해 왔다. 1일 반환운동 대표들이 신사를 찾은 현장에도 주일 한국대사관이나 한국문화원 관계자는 보이지 않았다. 한국 정부의 그간 방침에 따른 것이겠지만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을 향해 “배상할 일이 있으면 배상해야 한다”고 했다. 노 대통령이 북관대첩비까지 생각하지는 않았겠지만, 그 말은 “돌려줄 게 있으면 돌려줘야 한다”는 뜻도 된다. 그러나 일본에 당당히 주장할 것조차 미래지향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미리 선을 그어놓고 말하지 않겠다고 해 온 터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계인사들은 이 말에 그다지 개의치 않는 눈치다. 자승자박인 셈이다.
북관대첩비 반환에 대해 야스쿠니 신사 측이 ‘일본 정부로부터 반환 통보가 없는 한 곤란하다’고 하는 속뜻을 생각해봐야 한다. ‘원래 일본 정부의 것인데 우리는 위탁관리하고 있을 뿐’이란 뜻이다. 결국 한국 정부가 나서서 일본 정부를 움직여야 한다는 얘기다.
북관대첩비는 지금도 이국의 숲 속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조헌주 도쿄 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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