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도시법 통과 후폭풍]한나라 ‘한지붕 두가족’

  • 입력 2005년 3월 3일 18시 09분



#장면 1
3일 서울 강서구 염창동 한나라당 당사. 상임운영위원회의에 참석한 박근혜(朴槿惠) 대표는 시선을 바닥에 내리꽂은 채 시종 굳은 표정이었다. 기자들의 질문에도 일절 반응하지 않았다.

#장면 2
같은 시간 국회 기자실.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 김문수(金文洙) 의원 등은 기자회견을 갖고 ‘망국적 수도분할법’ 무효 투쟁을 선언했다. 이들은 당 쇄신을 촉구하며 지도부를 압박했다.행정도시법 처리에 뒤이은 후폭풍이 한나라당을 강타하고 있다. 강온 두 진영간의 내홍이 어디까지 격화될지 주목된다.》

▼지도부의 강경입장 고수▼

박근혜(朴槿惠) 대표는 3일 예정된 모든 일정을 그대로 소화했다. 표정은 굳었지만 상임운영위원회의를 주재한 뒤 자이툰부대 파병준비단을 격려하기 위해 육군 특전교육단도 다녀왔다.

박 대표는 이날 상임운영위에서도 말을 아꼈다. 그는 행정도시법 후속대책에 대해 “국회 지역균형발전 소위에서 190개 (정부) 산하기관 이전을 놓고 정치적 협상을 벌일 수 있다”며 “야당으로서 (행정도시법 문제에) 철저히 접근해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당부했을 뿐이다.

다른 당직자들도 박 대표를 엄호했다. 김무성(金武星) 사무총장은 “당무는 흔들림 없이 운영된다”고 말했다. 당내 일각의 대표직 사퇴 요구에 대해 박 대표는 “대표로서 당론을 지킨 것에 대해 책임지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일축했다.

박 대표 등 당 지도부는 일부 의원들의 당직 및 의원직 사퇴 움직임에 대해 “내놓으면 바로 처리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박 대표 측은 당직을 사퇴한 박세일(朴世逸) 전 정책위의장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당내 일각에서 유포되고 있는 행정도시법과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대의 과거사 진상을 규명하는 법의 ‘빅딜설’에 대해 박 대표 측은 “터무니없는 억측”이라고 펄펄 뛰었다.

박 대표 측은 지도부와 반대파 의원들이 감정 대결로 치닫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당이 시끄러우면 시끄러울수록 박 대표의 리더십에 손상이 커질 것이라는 판단이다. 유승민(劉承旼) 대표비서실장은 “이제부터 지도부와 반대파 의원들 간의 물밑 접촉이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박 대표는 15일 예정된 미국 방문을 계기로 외교안보 관련 어젠다를 적극적으로 제시하면서 국면 전환을 시도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박 대표는 전날 국회 본회의 표결 직전 열린 의원총회에서 당내 갈등이 확산되는 데 대해 안타까움을 참지 못해 울먹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의총에서 “내가 대권 욕심에 사로잡혀서 (법안 처리를) 추진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며 “당론은 내가 결정한 것도 아니고, 심사숙고해서 의총에서 정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당 관계자가 전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반대파 투쟁委 결성▼

행정도시법에 반대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은 3일부터 사실상 지도부를 겨냥한 투쟁에 돌입했다.

이재오(李在五) 김문수(金文洙) 박계동(朴啓東) 의원 등은 이날 ‘수도지키기투쟁위원회’를 발족했다. 투쟁위 측은 이날 오후까지 47명의 의원이 합류했다고 밝혔다.

특히 박세일 의원이 정책위의장직을 사퇴한 데 이어 박진(朴振) 국제위원장, 박재완(朴宰完·제3) 이혜훈(李惠薰·제4) 박찬숙(朴贊淑·제6) 정조위원장 등이 잇달아 당직을 사퇴하고 투쟁위에 합류해 당직 사퇴 도미노 현상이 나타났다.

이들은 1차적으로 “여당과 무책임하게 법안에 합의했다”며 김덕룡(金德龍)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다만 박근혜 대표에 대한 직접 공격은 일단 자제하는 분위기다. 행정도시법에 반대하는 것이 당권 투쟁용이 아니냐는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재오 의원은 이날 기자와 만나 “양식 있는 정치인이라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고, 권철현(權哲賢) 의원은 “의원들을 기만하는 사람을 당 지도부로 인정할 수 있겠느냐”고 흥분했다. 전재희(全在姬) 의원은 “수도 분할의 철회를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며 이날부터 국회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이날 오후 15명이 참석한 투쟁위 1차 회의에서도 지도부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박세일 의원은 “현 지도부는 국민에 대한 사랑이 없으며 정치가 점점 저질이 되어가고 있다”고 힐난했다.

전날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던 그는 새정치 수요모임 소속 일부 의원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남미를 방문 중인 김원기(金元基) 의장이 귀국하는 대로 사퇴서를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시민단체 및 법조계와 함께 헌법소원 제기를 위한 대책 마련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은 공개적인 언급은 않고 있으나 행정도시법 반대 투쟁에는 적극 동조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측근은 “법안 통과 후 이 시장이 ‘표 얻는 데만 집착하는 정치권에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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