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국 대사는 중요한 자리다. 대사가 없다 해서 당장 큰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사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자리는 아니다. 누가 대사로 오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물론 후임 대사를 결정하는 것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전권이다. 한국 정부가 주문할 일도 아니고 외부 인사가 참견할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탁월한 능력을 갖춘 훌륭한 적임자가 와야 한다는 것은 두 나라 국민의 바람일 것이다.
어느 나라든 대사가 갖추어야 할 공통의 덕목이 있다. 대사는 자국의 국가 원수가 주재국 국가 원수에게 보낸 개인적 특사인 동시에 자국 정부를 대표하여 주재국 정부와 양국 관계를 협의하는 전권이 주어진 특명 사절이다. 그래서 언제든지 필요하면 대통령과 외교부 장관을 비롯한 주재국의 고위 당국자들과 만나 양국의 현안을 협의하고 풀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양국 관계가 긴밀하면 할수록 더욱 그러하다. 한미관계가 중요한 만큼 주한 미국 대사도 그런 사람이 와야 한다. 부시 대통령의 개인적 신임이 있는 사람으로서 한국 정부의 고위 정책결정자들과도 서로 믿고 언제든지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지금 한미 양국 간에는 시급한 난제가 쌓여 있다. 특히 외교·안보 쪽이 그러하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고 6자회담을 거부한 터여서 이런 사태가 좀 더 오래 지속되면 한반도에 다시 위기가 오지 않을지, 그리고 이 문제를 둘러싸고 다시 한미 양국 간에 갈등이 심화되지 않을지 모두 걱정하고 있다. 재선에 성공한 후 단일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사들로 새 외교·안보라인을 구축한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독재국가로 규정하고 자유와 인권의 확산을 내세워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래서 필요하면 미국 행정부 내에서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소신과 용기도 신임 대사가 갖추어야 할 또 하나의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임 대사에게 바라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한미관계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거시적 능력이다. 양국 간의 복잡한 현안을 풀 수 있는 실무형의 전문가나 거물 정치인도 좋지만 그보다도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잘 알고 양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깊은 지적 성찰과 고민을 한국 국민과 함께 할 수 있는 지성적 외교관이어야 한다. 신임 대사는 앞으로 한국에서 3년 내지 4년간 근무하게 될 것이다. 이 기간은 전환기에 처한 한미관계가 더욱 성숙한 21세기 동반자 관계로 발전되느냐, 그렇지 않으면 서로 삐걱대는 파행적 우방으로 남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다. 신임 대사는 동북아 지역에서 새로운 정치경제적 다자질서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한미 양국이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적 능력과 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정부와의 협력은 물론 한국 국민의 마음을 이해하고 한국 국민과 대화할 수 있는 그런 훌륭한 대사가 부임해 오기를 바란다.
정종욱 아주대 교수·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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