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부총리 사퇴]의혹제기서 자진사퇴까지

  • 입력 2005년 3월 7일 18시 18분


정부 경제팀을 이끌어온 이헌재(李憲宰)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결국 ‘부동산투기 의혹’이라는 암초에 부딪혀 중도 하차했다.

20여 년 전 위장전입(거주하지 않으면서 주소지로 등록하는 것)과 명의신탁(다른 사람의 명의를 빌려 부동산을 사는 것) 등 불법 및 편법을 통해 경기 광주시 소재 논밭을 매입한 것으로 밝혀진 지 8일 만이다.

의혹이 제기된 뒤에도 청와대는 상당기간 강력한 재신임 의사를 밝혔지만 여론이 악화하면서 정책의 신뢰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사표를 수리하기로 했다.

▽이 부총리 발목 잡은 부동산 투기 의혹=지난달 24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발표한 재산등록 현황에서 이 부총리는 금융감독위원장 재직 시절인 1998년보다 재산이 65억 원 불어난 것으로 드러나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이때만 해도 20여 년 이상 갖고 있던 땅 값이 오른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부동산투기 의혹이 나오기 시작했다.

부인 진진숙(陳眞淑) 씨가 지난해 4월 매각한 경기 광주시 초월면 지월리의 전답(田畓) 8개 필지(총 5800여 평)를 1982년 9월부터 1986년 7월까지 4차례에 걸쳐 위장전입과 명의신탁으로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

이 부총리는 이날 재경부 공보실 및 비서실을 통해 “1979년 공무원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유학가면서 있는 돈을 모두 털어 산 땅이 차익이 난 것”이라며 “투기목적으로 부동산을 사거나 판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위장전입과 명의신탁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어 의혹이 증폭됐다.

이 와중에 이 부총리가 3·1절 행사에 참석하지 않고 일부 국회의원과 골프회동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여론은 더 확산됐다.

하지만 청와대는 2일 이 부총리에 대한 강력한 재신임 의사를 밝혔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3일 이 부총리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재경부의 업무성과를 크게 칭찬하기도 했다.

이 부총리는 3일 대통령 업무보고 결과를 브리핑하면서 “본의 아니게 물의를 빚어 면구스럽다”며 머리를 숙여 사과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하지만 이 부총리에 대한 부동산 투기 의혹은 여기서 마무리되지 않았다.

이 부총리 부인의 경기 광주시 전답을 매입한 C 씨가 7000만 원짜리 전셋집에 사는 트럭운전사라는 사실이 드러났고 C 씨가 이 전답을 사기 위해 15억 원을 대출받았던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2003년 10월에 작성된 매매계약서에 명기된 부동산중개인은 이 계약서에 서명한 적이 없다고 밝혀 의혹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사실 매수인들이 어떤 돈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진 씨로부터 논밭을 사들였는지는 이 부총리로서는 잘 알 수도 없는 문제였다. 제기된 의혹 가운데 일부는 무리한 ‘여론몰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이 부총리 측이 불법 및 편법으로 농지를 사들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한번 나빠진 여론은 이 부총리에게 불리하게만 돌아갔다.

▽여권 핵심의 문제제기가 ‘치명타’=상황이 수습되지 않는 가운데 열린우리당의 실세(實勢)들이 잇달아 이 부총리의 ‘결단’을 촉구하면서 이 부총리를 더욱 코너에 몰아넣었다.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문희상(文喜相) 의원은 5일 “대통령의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며 상황에 따라 이 부총리 거취에 대한 청와대 입장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어 6일에는 장영달(張永達) 의원이 이 부총리의 결단을 촉구했다.

이처럼 모든 상황이 꼬이기 시작하자 이 부총리는 더 이상 견디기 어렵다고 판단해 자진사퇴 쪽으로 마음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총리의 측근들은 6일 밤 “이 부총리가 버티기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이 부총리는 7일 오전 자신을 강력하게 지원하던 청와대에 사표를 냈다.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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