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행정도시 건설에 따른 ‘수도권 공동화(空洞化)’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수도권 규제완화 대책을 놓고 고심 중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전반의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여론조사 결과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행정도시법 통과를 둘러싼 당내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단일한 수도권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잠재적인 대권주자들도 각각 다른 대안을 구상 중이다.
▽열린우리당의 수도권 달래기 배경=당이 전화자동응답방식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 지역 당의 지지율은 1월 27일 26.2%에서 행정도시법이 통과한 다음 날(3월 3일) 23.5%로 2.7%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한나라당 지지율은 같은 기간 31.6%에서 37.1%로 5.5%포인트나 상승했다.
김한길 수도권발전대책특위 위원장이 8일 국방부와 협의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주요 공군 시설인 서울공항의 이전 가능성을 거론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서울공항 이전이 수도권 과밀화 억제 정책에 역행한다는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9일 “서울공항의 기능을 김포공항으로 합치는 게 가능하지 않겠느냐”며 물러서지 않았다.
또 교육인적자원부는 8일 수도권발전대책특위와의 간담회에서 △서울지역 내 대학 이전 △서울 소재 소규모 대학 정원 증원 △지방과 수도권 대학 간 구조조정에 따른 지방 대학의 수도 이전 허용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런 방안이 수도권 인구 집중을 불러올 것”이라는 일부 지적에 대해 “지나친 비약”이라고 반박했다.
열린우리당의 위기감은 역대 대통령선거에서 ‘수도권 승리=대선 승리’라는 상관관계가 반복돼 왔다는 점과 무관치 않다. 무리가 따르더라도 수도권 민심을 달래기 위한 정책을 밀고 나가겠다는 것이다.
지난 4번의 대선(13∼16대)을 보면 수도권에서 다수 득표를 한 후보가 모두 대통령에 당선됐다.
한 핵심 당직자는 “충청권 등 지방의 정서는 한번 굳어지면 변하기 어렵지만 수도권 정서는 여러 이슈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며 “행정도시법으로 충청권의 지지는 굳어졌으니, 앞으로 수도권 개발 이슈를 적극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한나라 행정도시 엇갈린 셈법▼
▽한나라당, 엇갈리는 셈법=박근혜(朴槿惠) 대표와 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의 수도권 셈법이 엇갈리고 있다. 손학규(孫鶴圭) 경기 지사는 큰 틀에서 박 대표와 비슷한 편이다.
박 대표 측은 행정도시 이슈의 원인 제공자가 여당인 만큼 수도권에서 크게 손해날 게 없다고 보고 있다. 그 대신 한나라당은 당 쇄신을 통해 세대 대결에서 승세를 굳힌다는 전략이다. 핵심은 이념적 지향점이 자유로운 20대 초반∼30대 초반 세대를 하나로 묶는 ‘포스트 386세대’를 386세대와 분리 대응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포스트 386세대’ 공략에 주력한다는 것이다.
한 핵심 당직자는 “한나라당이 행정도시법에 합의하는 절차를 통해 충청권 교두보를 확보함으로써 수도권과 충청, 호남권 등 서부벨트가 완전히 여당에 넘어가는 최악의 사태는 피했다”고 말했다.
반면 이 시장 측은 우선 행정도시법 반대 이슈로 수도권 지지층을 결집시켜야 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수도권에 탄탄한 지지세를 구축한 뒤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충청권 발전 전략을 제시해 충청권의 민심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충청 주민들도 수도 분할의 정략적 의도를 알고 있기 때문에 꾸준히 설득하면 민심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최호원 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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