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측의 지적을 엄숙하게 받아들이겠다.”(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일본 총리)
“이럴 때일수록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서로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관방장관)
역사교과서 왜곡과 독도 문제로 한국 여론이 들끓고 있지만 이를 지켜보는 일본 수뇌부의 태도는 침착하다 못해 태평하다고 할 정도다.
15일 항의 방문차 일본을 찾은 한국 국회 대표단에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 전 문부과학상은 “(교과서 문제에서) 여러분이 걱정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다지 진지한 기색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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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말 왜 이러나=일본 집권 자민당은 창당 50주년을 맞는 올해의 중점 정책으로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계속 △영토 문제에 대한 확고한 대응 △현행 평화헌법의 개정 등을 내놓았다. 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국가주의 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교육기본법을 개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역사교과서 왜곡과 독도 도발은 자민당의 핵심 정책 안에 이미 들어있는 셈이다.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아무리 미래를 얘기해도 집권당의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점을 재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시마네(島根) 현 의회가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 제정 조례안을 제출한 뒤 일본 외무성이 시마네 현에 자제를 촉구하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실제로는 중앙과 지방 정계 간의 치밀한 역할 분담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시마네 현은 자민당 막후 실력자인 아오키 미키오(靑木幹雄) 참의원 회장과 호소다 관방장관의 출신지로 이들은 지방 의회와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 동해 한가운데 우뚝 선 독도의 일몰. 대한민국에서 맨 먼저 일출을 볼 수 있는 독도는 일몰도 가장 일찍 맞이한다. 석양을 배경으로 한 독도의 자태에서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
▽‘한국 왜 이러나’ 일본의 엉뚱한 불만=한국의 항의 시위를 바라보는 일본 사회의 시각은 대체로 차갑다.
한 대학 교수는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과거 역사를 반성한다는 뜻을 밝혀 왔다”며 “그런데도 계속 양국 사이에 문제가 생기니까 짜증스러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은 1998년 당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의 한일 미래 동반자 선언으로 과거사 문제가 일단락됐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독도와 교과서 문제에서 보듯 한일 간의 마찰이 일본에 의해 촉발된 사실은 외면한 채 1998년의 선언 문구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일본 사회를 60년간 얽매어 온 전범국의 멍에에서 이제는 벗어나고 싶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
일본 언론들은 올해 초 노무현(盧武鉉) 정부가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 문서를 공개했을 때도 “노무현 정권이 국내 정치적 계산 아래 ‘역사 바로 세우기’를 어젠다로 설정했다”고 분석했다. 과거사 문제는 이제 한일 관계의 숙제가 아니라 한국 내의 정치적 쟁점일 뿐이라는 것이다.
▽막가는 일본 ‘내 갈길 간다’=일본의 우경화는 1990년대 이후 전쟁 책임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전후 세대가 각 분야의 주역으로 등장한 데 따른 필연적 성격도 있다. 일본도 다른 나라와 똑같은 ‘보통국가’로 할 말은 하고 국제사회에서 경제력에 걸맞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일본 정계에서 대표적인 차세대 주자로 꼽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간사장 대리와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경제산업상,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방위청 장관 등이 자위대 군비 확충과 헌법 개정을 주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몇 년간 일본 사회의 우경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된 점을 감안할 때 후소샤(扶桑社)판 교과서의 왜곡 정도가 4년 전보다 심해질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라고 지적한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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