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뭔지…” 떠나는 박세일

  • 입력 2005년 3월 15일 18시 20분


“의원직 버리겠습니다”행정도시법 국회 통과에 항의해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힌 한나라당 박세일 의원(왼쪽)이 15일 김원기 국회의장을 찾아가 사직서를 제출한 뒤 “수리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의원직 버리겠습니다”
행정도시법 국회 통과에 항의해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힌 한나라당 박세일 의원(왼쪽)이 15일 김원기 국회의장을 찾아가 사직서를 제출한 뒤 “수리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한나라당 박세일(朴世逸) 의원이 1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회의 행정도시법 통과를 막지 못한 데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사직하겠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이날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국회 사무처는 제헌국회부터 지금까지 의원이 국회의 법안처리 문제 때문에 사직한 경우는 박 의원이 처음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30∼40년 전 제출된 의원 사직서 중에는 ‘일신상의 사유’라고만 적혀 있는 게 많다”며 “그들 대부분은 입각이나 다른 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직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날 회견에서 행정도시법을 ‘여야 간 당리당략의 산물’로 규정하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을 싸잡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여당은 의원이 가져야 할 기본 책무조차 포기하고 ‘거수기 정당’ 역할을 했고, 야당은 정부 여당의 잘못을 견제 비판하지 못하는 ‘들러리 정당’이 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박 의원은 “야당이 원칙을 지켜야 할 것을 절충했고, 견제해야 할 것을 협조했다. 야당은 소금처럼 그 맛을 잃으면 국민이 던져 버린다는, 엄중한 역사의 심판을 명심해야 한다”며 사실상 한나라당 지도부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또 그는 정부의 행정도시 건설 추진을 인기에 영합하는 평등주의 국가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고, “이번에 통과된 수도분할법(행정도시법)이 나라를 망치는 전주곡인 것 같아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회견 도중 간간이 감정에 북받쳐 울먹였으며, 이 장면을 지켜본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 김문수(金文洙) 박형준(朴亨埈) 의원 등 10여 명도 침울한 표정이었다.

박 의원은 지난 주말 이각범(李珏範) IT전략연구원장과 서울대 유우익(柳佑益) 지리학과 교수 등 가깝게 지내는 학계 인사들과 만나 논의한 끝에 사퇴 결심을 최종적으로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박 의원과 이 원장은 김영삼(金泳三) 정부 후반기에 청와대에서 각각 사회복지수석비서관, 정책기획수석비서관으로 활동했던 인연이 있다.

이 원장과 유 교수 등은 “사퇴를 하는 게 잘못된 국정을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이며, 역사적으로 잘못된 정책에 용기 있게 저항한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며 박 의원에게 사직을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박 의원은 최근 주변 의원들에게 “국회에서 활동하기 위해선 정략적 사고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나는 그게 잘 안된다. 오히려 국회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은 것 같다”는 고민을 털어놨다는 후문이다.

박 의원은 14일 밤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사퇴 의사를 철회할 수 없다는 뜻을 최종 통보했다. 박 의원은 16일 경기도의 한 사찰로 들어가 심경을 정리하고, 향후 거취를 결정할 예정이다.

박 의원은 지난해 3월 박 대표의 종용으로 ‘탄핵 후폭풍’에 휩싸인 한나라당에 입당해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총선을 치렀으며, 여의도연구소장과 당 정책위의장을 지냈다.

□ 박세일 의원은…

△서울 출생, 57세

△서울대 법대, 미 코넬대 경제학 석·박사

△서울대 법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대통령정책기획, 사회복지수석비서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장,

정책위의장(17대 의원)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비례대표 탈당땐 의원직 자동상실▼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은 박세일 의원이 15일 제출한 의원 사직서를 반려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박 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하는 방법은 탈당밖에 없게 됐다. 국회법은 비례대표 의원이 탈당하면 의원직이 자동 박탈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박 의원은 이날 김 의장을 만나 “탈당하지 않도록 의장님께서 반드시 사직서를 수리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고, 기자회견에서도 “한나라당을 사랑하기 때문에 탈당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의장의 한 측근은 “박 의원이 국회의 의사일정이 아니라 당론에 반대해 사퇴키로 한 만큼, 굳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면 탈당을 하는 것이 맞다”고 선을 그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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