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김무성(金武星) 사무총장은 18일 KBS를 항의 방문해 민·형사상 법적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고, 정연주(鄭淵珠) 사장은 관련 코너의 폐지를 약속하며 사과했다. 하지만 문제의 패러디는 KBS가 인터넷 매체인 ‘미디어 몹’의 제작물을 방송한 것인 만큼 인터넷 상의 정치 패러디는 여전히 걸러질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어디까지 왔나=인터넷 정치 패러디는 2002년 대선을 거쳐 지난해 탄핵 정국과 총선 국면에서 본격화됐다. 친여(親與) 성향의 누리꾼(네티즌)들이 주로 만들어 노사모, 열린우리당 홈페이지를 거쳐 퍼졌다.
이 패러디들은 대부분 ‘여권=선, 야권=악’이라는 이분법 구도로 만들어져 여권의 누리꾼 동원 의혹마저 낳았다. 총선 전 만들어진 ‘정치 본색’은 한나라당을 ‘딴나라파’, 민주당을 ‘새천년 런닝구파’ 등 조직폭력 집단으로 묘사했다.
이에 한나라당은 자체 패러디 사이트인 ‘OK 좋은나라’를 통해 ‘무법자 노란돼지’ 등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대선 자금 모금 과정을 비판한 패러디로 맞불 공세를 폈다.
총선 후에도 이런 기류는 이어졌다. 친노 성향의 ‘라이브이즈’ 등에서는 박 대표를 ‘전설의 유신 공주’ 등으로 그린 ‘여의도룡기’를 연재했고,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혀를 피묻은 칼과 합성한 자극적인 패러디물로 맞섰다.
박 대표 누드 패러디 이후 잠시 주춤했던 정치 패러디는 지난해 국가보안법 등 4개 쟁점 법안 처리 문제로 논란을 빚으면서 다시 활발해졌다.
스타 패러디 작가로 떠오른 ‘첫비’ 등은 드라마 ‘겨울연가’를 본떠 한나라당 박 대표와 김덕룡(金德龍) 전 원내대표를 ‘국보법 연인’으로 그린 ‘붉은 연가’ 패러디를 내놓았다. 하지만 지난해 말 열린우리당 내 일부 개혁파의 요구와는 달리 국보법 처리를 미룬 천정배(千正培) 전 원내대표를 인기 개그맨 리마리오에 빗대 ‘순수 사쿠라 혈통 거짓말 구라3세 정배리오’로 혹평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패러디 작가군이 친노 그룹으로 좁혀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어떻게 봐야 하나=선거법에 인터넷상 정치 패러디를 직접 다루는 규정은 없다. 미국의 선거법도 마찬가지다.
박 대표에 대한 패러디로 기소된 라이브이즈 김태일 대표가 지난해 10월 법원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지만, 이는 선거법 중 선거 180일 전 사전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규정에 저촉됐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문제를 둘러싼 시각은 엇갈린다. 한국외국어대 문재완(文在完·법학) 교수는 “선거 기간에는 문제가 되지만 허위사실을 적극적으로 적시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위법성을 따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홍익대 방석호(方碩晧·언론법학) 교수는 “누드 패러디는 명백히 피해자가 있는 만큼 단순한 의사 표현의 자유로 보기 힘들다”며 명예훼손 소송도 가능하다고 해석했다.
이러한 시비와 논란이 결국 우리 정치 문화와 의식 수준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숭실대 강원택(康元澤·정치외교학) 교수는 “영국의 경우 토니 블레어 총리를 히틀러처럼 묘사한 피켓을 들고 다녀도 법적 시비는 없다”며 정치권에 타협과 관용의 문화가 정착되기 전에는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KBS 여과시스템 있긴한가” ▼
KBS가 최근 잇따라 선정성 시비에 휘말리면서 공영방송에 부적합한 내용을 사전에 거르는 ‘게이트 키핑(gate keeping)’ 기능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KBS2 TV ‘생방송 시사투나잇’은 프로그램 중 한 코너인 ‘헤딩라인 뉴스’에서 15일 한나라당 전재희 박세일 의원 패러디를 방영해 논란을 빚었다.
‘VJ 특공대’도 지난달 18일 우표책을 거래하는 장면을 거짓으로 연출해 방영했다가 방송위원회로부터 ‘권고’ 조치를 받았다.
‘헤딩라인 뉴스’나 ‘VJ특공대’는 외주 제작사가 만든 것이지만 사전에 담당 PD와 기획 편집회의를 거친다는 점에서 방송사의 게이트 키핑 기능이 결여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일부 외주 제작사는 프로그램 선택권을 갖고 있는 PD의 의중에 맞춰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KBS가 대(大)팀제로 개편한 뒤 팀장 한 사람이 팀 내 모든 프로그램을 체크하지 못해 무리수가 걸러지지 못한다는 구조적인 문제점도 지적된다.
한국외국어대 김우룡(金寓龍) 교수는 “KBS의 잇단 실책은 시청률 지상주의에 빠져 외주 제작을 비롯해 프로그램의 품질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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