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비판 서한’에 입 다문 고이즈미

  • 입력 2005년 3월 24일 18시 07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초강경 대일(對日) 발언에 대해 24일 일본 정부는 공식 논평을 삼가고 사태를 관망했다. 그러나 자민당 일각에서는 대통령까지 나서 대일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데 대해 불쾌감을 드러내며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 분쟁’을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가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한편으로는 자성론도 나오고 있다.

○…24일 자민당 의원 모임에서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 전 외상은 독도 문제를 ‘이성적’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주장했다. 그러나 아이사와 이치로(逢澤一郞) 외무성 부상은 “국제사법재판소로 가려면 한국 동의가 필요하다”고 제지하며 “어떻게 하는 것이 적절한지 생각해야 한다”고 신중론을 폈다.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관방장관도 “현재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통일된 견해가 없으며 제소는 선택 방안의 하나”라고 말했다.

외무성 내에서는 노 대통령의 3·1절 연설을 일본 정계가 ‘국내 정치용’이라고 폄훼한 게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자성론이 나왔다고 외교 소식통들이 전했다.

그러나 다른 정부 관계자는 “감정적인 표현이 많은 게 북한과 똑같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으며, 외무성의 한 간부는 “말문이 막힌다.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23일 오후 2005년도 예산안 통과 직후 가진 기자회견이 끝날 무렵 한 일본 기자가 “총리, 총리, 총리”라고 세 번이나 부르며 한일관계에 대해 논평을 요구했으나 굳은 표정으로 총총히 회견장을 떴다. 그는 회견에서 전반적인 외교 상황을 언급하며 ‘냉정한 대처’란 원론적인 말만 했다.

일본 정부는 인터넷을 통한 대국민 메시지란 점을 들어 공식 논평은 피하고 있다.

○…도쿄의 주일 한국대사관 직원들은 23일 밤늦게까지 일본 언론 매체들의 보도 내용과 반응을 알아보며 분주한 시간을 보낸 데 이어 24일에도 향후 여파 등을 가늠하며 긴장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한일 우정의 해 2005’를 맞아 각종 행사를 준비하며 일본 관계자들을 접촉해 온 이들은 스포츠와 문화교류 행사마저 속속 중단된 상황을 우려했다. 연내 타결을 목표로 벌여 온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차질을 빚을 것도 우려했다. 일본 내 한류 붐이 급속히 시들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이었다.

○…24일 조간신문은 아사히신문과 요미우리신문이 1면과 종합면에 해설 기사를 곁들여 비중 있게 보도했으며 다른 매체들은 짤막한 사실 보도에 그쳤다.

아사히신문은 ‘조용한 대일 외교와 결별’이란 제목으로 독도 문제뿐 아니라 역사왜곡 교과서,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세 가지 이유가 뒤엉켜 한국 내 반일 감정이 폭발했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다음달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의식한 여권의 정치적 계산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언급했다.

요미우리신문은 ‘국민 분노 배경’이란 제목 아래 한국에는 경제적 타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고 보도했다.

공영방송 NHK는 노 대통령의 일본 비판이 인터넷을 통한 대국민 메시지란 점에서 일본 정부가 즉각 반응하지 말고 진의를 살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고 전했다.

도쿄=조헌주 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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