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명 “당내 경선은 축제지 전쟁은 아니다” 전문

  • 입력 2005년 3월 29일 14시 23분


서로 비켜 갈 수 없는 좁은 외나무다리에서 염소 두 마리가 만났다. 한 놈이 양보를 했으면 좋으련만 두 놈은 뿔을 맞대고 싸운다.

결국 두 놈은 뒤엉켜 싸우다가 다리 밑으로 추락.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다리 밑에서 입을 벌리고 기다리던 악어의 배를 채웠다.

이런 것을 일컬어 공멸이라고 하는 것이다. 같이 망한 것이다. 함께 죽은 것이다. 끝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이솝 우화를 적당히 윤색을 한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상임중앙위의장 경선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흔히들 선거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특히 열린우리당의 선거는 축제라고들 한다.

지난 대선 때 민주당 후보들이 경선을 치루면서 노무현 후보를 비롯한 경쟁자들이 국민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 당시 경선 과정을 줄 곳 따라 다니며 보았지만 남이 보기에 참 멋졌다. 그러나 과연 축제였을까.

축제에는 축복이 있어야 한다. 과연 축복은 있었는가. 있을 수도 있었겠지. 그러나 그 축복은 무늬만의 축복은 아닌가. 피가 마르는 경선에서 축복이 가능한가.

속알머리가 밴댕이 같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 경우라면 축복은 어림 없을 것 같다. 싸우면서 축복이라니 말이 안 되지. 위선 아닌가.

선거법을 위반한 사례들을 보면 이건 축복은 고사하고 오히려 저주가 맞을 것 같다.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어느 후보가 노무현 후보에게 쏟아 부은 말들은 부처님이 들어도 축복이라고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선거는 그런 것이다. 심한 표현인지는 몰라도 죽기 살기다. 설사 축복의 말을 한다 해도 그것은 눈 가리고 야옹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열린우리당의 상임중앙위원 선거는 어떻게 해야 된단 말인가. 분명한 것은 공멸만은 피하라는 것이다. 자멸은 저 혼자 죽는 것이지만 공멸은 다 죽는 것이다. 죽으려면 혼자 죽어라. 사퇴하면 된다. 다 죽으면 누가 좋아하나. 이적 행위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44.1%로 올랐다.

4.2 대회만 폼 나게 치르면 더 올라 갈 것이고 이렇게 되면 열린우리당도 제대로 숨 좀 쉬게 된다. 국민의 지지만큼 든든하고 확실한 빽이 어디 있는가. 그 만큼 전당대회는 중요한 것이다. 이런 판에 공멸에 앞장서서야 되겠는가. 맞아 죽을 인간 된다.

지금 각 후보들은 피가 마르는 운동을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개혁과 실용이 춤을 춘다. 토론을 보고 있으면 모두가 개혁과 실용의 전도사들이다.

그런데 개혁과 실용은 서로가 아무 연관이 없는 사돈의 팔촌인가. 개혁에는 실용이 배제되며 실용은 개혁과 담을 쌓은 남인가. 아니다. 모두가 버릴 수 없는 중요한 것들이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상대를 역적으로 치부하는 태도는 정치인의 도량이 아니다.

이번에 출마한 후보들은 열린우리당에서 뿐만이 아니라 이 나라의 소중한 인재들이다. 당 뿐이 아니라 국가를 경영할 충분한 자격과 경륜이 있는 재목들이다. 그렇다면 비록 선거과정이라 할지라도 피차 넘어서는 안 될 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선을 넘으면 그 때는 전쟁이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적을 섬멸해야 된다. 도리 없이 험한 말 주고받게 되고 감정상하고 막가게 된다. 그래서 승리를 했다고 하자. 그 다음은 무엇인가.

승리를 한 다음에는 무엇이 남는가.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영광 뒤에는 반드시 상처가 있어야 하는가. 훈장은 안 되는가. 나는 글의 머리에서 공멸이라는 말을 했다. 함께 망한다고 했다. 설사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 해도 패자의 가슴속에는 전투 중에 입은 상처로 앙금이 녹아 있다. 앙금은 좀처럼 삭지 않는다. 그래서 싸움은 하되 앙금은 남지 않도록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미국과 이라크의 싸움은 아니지 않은가. 선거에서의 전투는 몸으로 치고받는 몸싸움이 아니다. 말의 싸움이다. 그러나 말이란 때로 피가 흐르는 육체적 상처보다 더 깊은 상흔을 남긴다. 그게 마음의 상처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누구와는 딱 인연을 끊고 누구와는 손을 잡고 식의 발언은 안하는 게 좋다. 말 한마디로 천량 빚을 갚는가는 말은 정치판에서도 옳은 말이다. 말 좀 잘 한다고 판 휘젓고 다니면 말 잘 못하는 사람 서럽다.

적당이란 말은 부정과의 타협냄새가 나지만 때로는 약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세상에 독불장군이 어디 있나. 결별은 또 다른 만남의 약속이라고 한다.

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타협조차 할 수 없는 딱 부러진 독한 말을 해서 상대가 접근할 수도 없게 가시철조망을 치는가.

선거는 당 내 행사지만 구경꾼은 온 국민이다. 이를 득득 갈면서 서로 헐뜯는 후보들을 보면서 느끼는 연민은 바로 열린우리당과 후보에 대한 환멸로 바뀐다.

편작이 대붕의 뜻을 어찌 알겠느냐는 오만은 스스로 날개를 꺾게 만든다. 대붕이라 한들 날개가 꺾기면 어찌 날 수 있겠는가. 자멸이다. 민주당 경선 때 좋은 머리와 학벌로 감히 어느 누구도 겨루지 못할 것 같았던 정치인이 정도를 벗어난 행위로 국민을 짜증나게 만들고 급기야 도중하차를 하고 만인의 조소 감으로 전락한 예를 우리는 알고 있다.

겸손이 미덕임은 동서고금이 따로 없다. 열린우리당의 상임중앙위원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은 혼신의 힘으로 선거에 임하되 삶에는 내일이 있음을 알라는 것이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염소 같은 바보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떨어지면 다 함께 죽는다. 자고 깨면 외치는 것이 좋은 세상 만들겠다는 것이 아닌가. 축제는 아닐지라도 목숨 걸고 싸우는 짓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내일도 해는 다시 뜨니까.

2005년 3월 29일

이기명 (국민참여연대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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